스물여덟. 첫 직장에서 시스템 엔지니어로 일하던 나는 사실 머릿속이 늘 복잡했다. 학점은행제로 어렵게 4년제 학위까지 땄지만, 마음 한구석에 찍힌 “고졸”이라는 낙인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았다. 지금 이 기술을 더 파고들어 엔지니어로 계속 성장할 것인가, 아니면 아예 대학원에 가서 학력을 새로 쓸 것인가. 사회 초년생이 할 법한, 그러나 나에겐 너무도 무거운 고민이었다.
![[자서전] 고졸이 석사 학위를 취득하는 법 정보보호 석사 학위 논문 (동국대학교)](https://nuschool.cc/wp-content/uploads/2025/10/ja-226434-js30_02.jpg)
오늘은 그 고민 끝에 내가 어떻게 “고졸이 돈 한 푼 안 내고 석사 학위까지” 가게 되었는지, 그 길의 좋은 점과 무서운 점을 솔직하게 풀어보려 한다. 누군가에겐 비슷한 선택지가 놓여 있을 테니까.
기술자로 남을까, 학력을 세탁할까
기술력이 계속 성장한다면 충분한 연봉으로 보상받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확실하지가 않았다. 당시만 해도 실력 좋은 기술자들조차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었다. 기술은 뛰어난데, 회사는 어떻게든 연봉을 후려칠 생각만 하는 것 같았다.
내로라하는 IT 기술자들과 술자리에 앉으면 매번 나오는 얘기가 연봉과 노가다판 같은 대우에 대한 불만이었다. 다시 말해, 실력이 좋아도 연봉은 높지 않았고, 을의 입장에서 갑질을 당하는 일이 흔했다는 뜻이다.
반면에 석사 학위는 달랐다. 지금의 학력을 세탁할 수 있고, 논문이나 연구를 통해 또 다른 분야의 지식을 쌓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실력 없는 석사는 무시당한다”는 말도 기술자들끼리 늘 하는 얘기였지만, 기술 성장에 대한 자신감만큼은 있었으니 나는 석사 취득으로 마음을 굳게 먹었다. 더 높은 곳, 더 많은 연봉을 원했으니 대학원 진학은 당연한 선택이었다.
문제는 결국 돈이었다
마음을 먹고 나니 곧바로 현실이 발목을 잡았다. 대학원 학비였다. 대학교 학비보다 당연히 비싸다. 이걸 어떻게 감당하지? 연구실 교수가 주는 용돈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얘기도 들었지만, 그건 연구실 사정에 따라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돈이었다. 인생을 그런 도박에 걸 수는 없었다.
좀 더 확실하고 안정적으로 학비를 마련해야 했다. 생활비도 넉넉히 있어야 했다. 그래서 처음엔 학비와 생활비를 꾸준히 모아서 30대 중반이 넘어가기 전에 가자는 게 계획이었다. 그래도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이리저리 대학원 진학 정보를 모으고 있었다.
그러다 정보보호 학원에서 같이 다니던 친구에게서 뜻밖의 정보를 얻었다. 그 친구는 국가에서 학비를 지원받으며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친구를 통해 “고용계약형 석사과정”이라는 제도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나는 곧장 이 과정을 운영하는 학교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고용계약형 석사과정이란 무엇인가
알아보니 이 제도는 회사와 대학이 함께 좋은 인재를 키우기 위해 만든 과정이었다. 국가가 기업에 지원금을 주고, 기업은 그 돈으로 계약한 학생의 학비를 댄다. 대신 학생은 졸업 후 일정 기간 그 기업에서 일하게 된다. 정리하면 이렇다.
- 당시 미래창조과학부가 시행한 인력양성사업으로, 선발된 학생에게 2년간 등록금 전액을 지원한다.
- 여기에 더해 학업장려금(약 30~100만 원)과 인턴십 지원금이 제공된다.
- 기업과 학생을 매칭하는 과정이 필수이며, 매칭된 기업에서 졸업과 동시에 취업이 보장된다.
- 단, 취업 후 2년 이내에 퇴사하면 등록금·학업장려금·인턴십 지원금을 전액 반납해야 한다.
마지막 한 줄. 그때의 나는 저 문장을 그저 형식적인 단서 조항쯤으로 가볍게 읽고 넘겼다. 등록금이 공짜고, 매달 용돈까지 나오고, 졸업하면 취업까지 보장된다는데 무서울 게 뭐가 있겠는가. 어쨌든 이 과정은 내게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퇴근 후, 연구계획서와의 씨름
그래서 다니던 회사에서 퇴근하면 곧장 대학원 진학 준비를 시작했다. 이동하는 시간에도 연구계획서(학업계획서)를 붙들고 썼다. 작성하는 데만 한 달 정도 걸렸고, 지인들의 도움을 정말 많이 받았다. 회사 사장님과 상무님께 추천서를 받았고, 이미 대학원에 다니던 친구들이 연구계획서 쓰는 법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었다.
막상 지원하려니 변수가 많았다. 학교마다 접수 방법이 제각각이었다. 공통적으로는 연구계획서와 면접을 봤는데, 그중에는 시험을 보는 곳도 있었다. 다행히 시험은 범위도 없고 상식 수준이라, 막상 보니 기초적인 IT 지식이 전부였다. 시험 본다는 말에 막막했던 게 무색할 정도였다.
면접 방식도 가지각색이었다.
- 교수와 학생 일대일
- 교수와 학생 N대일
- 교수와 기업 담당자, 그리고 학생들이 함께 보는 N대N
2011년 당시 나는 이 사업을 운영하는 대학 다섯 군데 정도를 알아봤고, 그중 네 곳에 지원해서 두 곳에서 합격 통보를 받았다. “이제 정말 올라가는 일만 남았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학비는 0원, 매달 용돈에 노트북까지
돌이켜보면 나는 취업 준비나 스펙 쌓는 교육에 돈을 거의 쓰지 않았다. 취업 전문 학원도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을 받고 다녔고, 대학원은 학비가 전액 무료였다. 학기 중에는 매달 30만 원 정도 용돈이 나왔고, 방학 기간에는 연계된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월급까지 받았다.
처음엔 교수님 수발이나 드는 신세가 되는 줄 알았는데,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거의 귀빈 대접에 가까웠다.
- 고용계약형 석사과정 전용 연구실이 두 개나 제공됐다.
- 학생 각자에게 최신 노트북이 공짜로 지급됐다.
- 연구에 필요하다고 하면 원하는 도서를 사주었다.
국가에서 대학원에도 일정 금액을 지원해 주는데, 그 돈이 학생들의 용돈과 교제비, 시설 지원비로 쓰였다. 등록금을 빼면 내가 직접 낸 돈이라곤 1년에 10만 원 정도 하는 학생회비가 거의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국가장학생”이라는 자부심이 절로 생겼다.
아버지가 은행으로 폴짝폴짝 뛰어가시던 날
대학원에 합격했을 때, 가장 기뻐하고 축하해 주신 분들은 역시 부모님이었다. 아들이 재수, 삼수, 사수하는 걸 지켜보며 속으로 가장 마음고생이 심하셨을 분들이다. 그래도 내색 한 번 안 하시고 늘 응원하고 믿어주셨다. 그런 아들이 국가장학생으로 입학한다고 하니 더없이 자랑스러워하셨다.
그 학생회비 지로용지가 우편으로 집에 왔을 때, 아버지는 그걸 받자마자 은행으로 룰루랄라 폴짝폴짝 뛰어가서 입금하셨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어머니의 표정과, 옆에서 듣고 계시던 아버지의 표정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뿌듯했던 날을 하나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그날을 고를 것이다.
그런데, 공짜에는 족쇄가 있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완벽한 제도다. 고졸이 돈 한 푼 안 내고, 오히려 용돈까지 받으며 석사가 되고, 졸업하면 취업까지 보장되니 말이다. 그런데 세상에 절대 공짜는 없다는 걸, 나는 나중에야 뼈저리게 깨달았다.
앞서 가볍게 읽고 넘겼던 그 한 줄 — “졸업 후 2년간 매칭된 기업에서 일해야 하고, 그 안에 퇴사하면 지원받은 돈을 전액 토해내야 한다”는 조항 말이다. 좋게 보면 안정적인 취업 보장이지만, 뒤집어 보면 회사를 쉽게 떠날 수 없게 만드는 족쇄였다. 혜택이라고 믿었던 등록금과 학업장려금, 인턴십 지원금이 어느 순간 나를 옭아매는 사슬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졸업 후 매칭된 기업과의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 그곳을 나오려고 하면, 그동안 지원받은 몇천만 원을 벌금처럼 당장 반납해야 한다. 그 돈을 토해낼 수 없으니 결국 버틸 수밖에 없는 구조다. 계약이라는 게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그리고 회사와 개인 사이에서 개인은 늘 을의 자리에 선다는 것을, 나는 이 과정을 통해 처음으로 실감하게 됐다.
그래도 나는 이 길을 후회하지 않는다
족쇄 이야기를 했지만, 오해는 말았으면 한다. 만약 그 제도가 없었다면, 고졸이었던 내가 학비를 모으느라 30대 중반까지 미뤄가며 대학원을 가야 했을 것이다. 어쩌면 영영 못 갔을지도 모른다. 그 제도가 있었기에 나는 시간을 단축했고, 부모님께 국가장학생이라는 자랑거리를 안겨드릴 수 있었다.
다만 그때의 나에게 한마디 해줄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공짜처럼 보이는 그 혜택의 뒷면에 적힌 조건을, 합격의 기쁨에 들떠 흘려보내지 마라”고. 제도가 주는 기회는 분명 진짜였고, 그 안의 족쇄도 진짜였다. 그 두 가지를 모두 알고 들어가는 사람과, 좋은 면만 보고 들어가는 사람의 끝은 분명히 다르다.
고졸이라는 낙인 앞에서 망설이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이 길이 있다고 분명히 말해주고 싶다. 다만 들어가기 전에, 혜택과 족쇄를 같은 무게로 저울에 올려놓고 보라고. 그게 내가 직접 겪고 나서야 배운, 가장 솔직한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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