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학위로 연봉은 오르지 않는다 — 대기업의 현실

[자서전] 학위로 연봉은 오르지 않는다 — 대기업의 현실

목차

고졸이라는 낙인을 지우려고 석사 학위를 땄다. 그리고 시스템 엔지니어 시절 협업했던 대기업에, 내가 직접 입사하게 됐다. 솔직히 믿기지 않았다. “이제 정말 올라가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학위도 땄고, 대기업 명함도 생겼으니 연봉이며 대우며 다 따라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학위 그 자체로는, 대기업 타이틀 그 자체로는, 내 연봉도 내 만족도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았다.

정보보안 컨설턴트 시절 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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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만든 포트폴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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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게 협상하러 갔는데, 돌아온 말은 참담했다”

나는 고용계약형 석사과정으로 학위를 받았다. 국가와 기업이 학비를 지원해 주고, 졸업하면 매칭된 기업에 취업이 보장되는 과정이다. 대학원 생활은 즐거웠고, 국가장학생이라는 자부심도 컸다. 문제는 졸업하고 매칭된 대기업과 첫 연봉 협상을 하는 자리에서 터졌다.

정말 기분 좋게 협상하러 갔는데, 돌아오는 말은 참담했다. 국가와 기업이 지원해 준 학비를 빼고 내 연봉을 측정하겠다는 것이었다. 거기에 지난 회사 근무기간이 짧다는 것까지 약점으로 잡혔다. 협상이라기보다는 통보였고, 노예 계약 같은 느낌이었다.

직장인이라면 첫 연봉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이다. 이 회사를 나가더라도 그 연봉을 기점으로 다음 연봉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협상은 일주일에 걸쳐 진행됐지만, 당시의 나에겐 좋은 조건을 끌어낼 협상의 기술이 없었다. 무엇보다 위치 자체가 불리했다.

혜택이 족쇄가 되는 순간

가장 잔인한 건 따로 있었다. 협상이 안 돼서 입사하지 않는 건 사실 큰 문제가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입사를 포기하면 석사학위에 지원된 금액을 전부 반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몇천만 원을 벌금처럼 당장 토해내야 했다.

지금까지 “혜택”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들이, 그 순간 내게 “족쇄”가 되어버렸다. 상대방은 예의를 갖춰 안타까워했고, 석사 학위 취득을 축하해 주고 존중해 주었다. 하지만 결국 사회는 약점을 쥐고 거래를 한다. 협상하던 그 사람도 그저 주어진 업무에 충실했을 뿐이다.

고용계약 만료까지 연봉 협상이 두 번 더 남아 있었지만, 국가장학생이라는 약점(?)이 내게 유리하게 작용할 리 없다는 걸 직감했다. 예상대로였다. 매년 협상에서 나는 불리했고, 인상률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협상이 틀어지면 퇴사해야 했고, 퇴사하면 또 몇천만 원을 토해내야 했다. 회사는 비용을 줄여야 하고, 합법적이지만 잔인하게 쓸 수 있는 온갖 수단을 다 동원했다. 연봉 인상 폭이 좁은 이유는 머리로는 이해했다. 그래도 그 이론에 선택된 당사자가 나라니, 너무 가혹했다.

31살, 대기업 첫 연봉 2900만 원

고용계약형 석사과정으로 대기업에 입사할 때 내 나이 31살이었다. 그곳에서 제시한 연봉은 2900만 원이었다. 나는 적어도 4500은 받을 줄 알았다. 10년간 달려온 노력의 보상이 고작 이 정도인가 싶어 좌절했다.

그때부터 회사에 반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월급날 통장에 찍히는 돈을 볼수록 화가 났고, 어쩔 수 없는 나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주어진 일도 하기 싫었다. 대기업 명함을 받았으니 좀 더 여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현실은 정반대였다. 마음이 떠난 회사가 왜 지옥이라고 하는지, 그제야 알았다.

정치질, 그리고 기술자를 문서팀으로 보내버리는 회사

연봉만 문제가 아니었다. 회사 “생활”도 “업무”도 쉽지 않았다.

생활에서 가장 힘든 건 경쟁이었다. 직원들끼리 경쟁 의식이 심했고, 낮은 직급에서부터 정치질이 시작돼 몸과 정신을 갉아먹었다. 잘 지내보겠다고 조금이라도 말랑한 모습을 보이면, 그 속을 파고들어 약점을 찾아내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약점을 이용해 괴롭히기까지 했다.

업무는 더 황당했다. 명색이 기술자인 나를, 기술 구현이 전혀 없는 문서 작성 위주의 팀으로 배정한 것이다. 기술 업무를 그렇게 강하게 어필했는데도 굳이 문서 업무로 보냈다. 왜 그래야 했는지 아직도 풀리지 않는다.

당시 돌아온 말은 이랬다. “문서 업무로도 충분히 기술 발전이 가능하다. 문서 업무가 너에게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다.”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주어진 일에는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당연하게도, 처음 하는 업무라 신입과 똑같은 실적밖에 쌓이지 않았다. 경력직이 신입 업무를 하고 있으니, 평가도 최악으로 받았다. 당연한 결과였다.

알고 보니 텃세였다

뒤에서 들리는 얘기로는, 이런 업무 배정이 고용계약형 석사과정으로 들어온 인력들에 대한 텃세였다고 한다. 그 6개월 동안 내 실력은 업무 실적에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고, 개인의 기술 역량 성장마저 막혀버렸다.

그렇게 첫 6개월을 허망하게 보냈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결국 그 팀에서 버티지 못하고, IT 기술을 조금이라도 쓸 수 있는 다른 프로젝트로 옮겼다. 그곳에는 정치질도 없고 괴롭히는 사람도 없었다. 사람들도 착하고 좋았고, 갑 업체 사람들과도 격 없이 지낼 정도였다. 마음은 조금 풀렸지만, 초반 6개월의 스트레스가 한계까지 차올랐는지 정신 상담을 받기도 했다. 한동안은 그 회사에 얽힌 사람들을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서, 일부러 정을 떼려 애썼다. 그 시절의 누군가가 혹시 이 글을 본다면, 되돌릴 수는 없지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이 회사에서의 2년은 정말이지 너무도 길었다.

학위도, 대기업도 나를 구해주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학위가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라 믿었다. 고졸 낙인만 지우면, 대기업 명함만 손에 쥐면, 연봉도 대우도 자존감도 다 따라올 거라고. 그런데 학위는 학위였고, 명함은 명함이었을 뿐이다. 그 종이 한 장이 내 연봉을 올려주지도, 내 하루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도 않았다.

연봉은 결국 협상력과 위치에서 결정됐고, 만족은 그 조직 안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어떤 사람들과 부대끼느냐에 달려 있었다. 학위는 출발선을 조금 옮겨줬을 뿐, 그 뒤를 책임져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지금 누군가 “학위만 따면, 대기업만 가면 다 풀린다”고 믿고 있다면, 나는 꼭 말해주고 싶다. 학위도 타이틀도 분명 도움은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연봉도, 대우도, 마음의 평화도 보장되지 않더라. 진짜 중요한 건 그 다음, 내가 어떤 실력을 쌓고 어떤 자리에서 어떻게 협상하며 살아갈 것인가였다. 나는 그 사실을 31살, 통장에 찍힌 2900만 원 앞에서 가장 아프게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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