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신났던 첫 직장, 그리고 카드빚

[자서전] 신났던 첫 직장, 그리고 카드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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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여덟에 드디어 첫 직장에 출근했다. 누군가에겐 평범한 나이, 평범한 출근일이었겠지만 나에겐 그렇지 않았다. 재수, 삼수, 사수까지 하며 대학 문턱도 밟지 못했던 내가, 고졸로 IT 바닥에서 첫 명함을 갖게 된 날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첫 직장이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밤을 새워도 즐겁기만 했다. 그런데 그 신나는 시절의 뒤편에는 자꾸만 빵꾸가 나는 카드값이 따라붙고 있었다.

Red Hat 등 오픈소스 기술을 다룬 첫 직장
Red Hat 등 오픈소스 기술을 다룬 첫 직장
첫 직장 사무실 풍경
첫 직장 사무실 풍경

스물여덟, 시스템 엔지니어로 첫 출근을 하다

첫 직장은 정보 보안 학원에서 친해진 강사가 소개해 준 회사였다. 서버 운영체제로 가장 핫했던 리눅스를 가르치던 분이었는데, 수업도 재밌게 잘하고 무엇보다 실력이 좋은 강사였다. 기술적인 것부터 취업 같은 사적인 고민까지 이것저것 물어보다 보니 어느새 술도 한잔 기울일 만큼 가까워져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 인연 덕에 추천을 받아 첫 취업을 하게 됐다.

사실 내 목표는 정보 보안 쪽이었지만, 소개받은 곳은 보안 서비스 회사는 아니었다. 시스템 엔지니어가 각 고객사를 다니며 리눅스를 포함한 오픈소스 기술 지원을 해주는 회사였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분야가 뭐든 그땐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안정적인 직장을 갖고 싶었으니까.

입사 당시 회사 인력은 서른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비즈니스 규모는 결코 작지 않았다. 레드햇이 선정한 아시아 최우수 기술 지원 회사로 상을 받을 정도였으니까. 입사 전에도 성장성이 좋은 회사라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간간이 전해 들었다. 작지만 단단한, 그야말로 강소기업이었다.

입사를 했는데, 왜 일을 안 시켜?

그런데 입사하고 첫 일주일은 정말 고역이었다. 누구도 내게 일을 시키지 않았다. 나만 빼고 다들 바쁘게 움직였다. 눈치가 보여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었다. 사수는 출장을 나갔다고 하고, 누구 하나 날 챙겨주지 않았다. 그나마 같은 팀 사람 하나가 두꺼운 책 두세 권을 가져다주며 그냥 읽으라고 할 뿐이었다. 물론 그 책은 당시의 내가 아무리 들여다봐도 이해되지 않을 만큼 수준 높은 책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서야 드디어 정식으로 업무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한 두어 달 정도는 정말 밤잠 설치며 연습했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간단한 일인데, 당시엔 도무지 이해가 안 됐고 그냥 외워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사수가 일하는 걸 동영상으로 녹화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이 사수가 일하는 내용을 동영상으로 녹화하는 것이었다. 머리로 이해가 안 되니, 일단 그대로 찍어두고 반복해서 돌려봤다. 보고 또 보고, 따라 하고 또 따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익숙해졌다. 그렇게 손에 익고 나서야 비로소 그 업무에 대한 이론과 실전 작업의 이해도가 같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는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 자체가 흥미로워졌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찾아보고 이론을 정리했다. 그리고 그걸 업무에 적용해 직접 테스트해봤다. 입사 두 달 차에 단독으로 기술 지원을 나갈 수 있게 됐고, 6개월 차부터는 회사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자존감이 오르니 더 열심히 일했다. 남들이 꺼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휴가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 실력은 빠른 속도로 자라고 있었다.

놀면서 기술을 배운다는 게, 이렇게 즐거운 일이라니

연봉은 터무니없이 적었지만, 좋은 사람이 많았고 커리어를 쌓으며 비전을 키울 수 있는 회사였다. 회사 자체가 아시아에서 실력 있는 회사로 매년 상을 받다 보니, 그 자체로 나에게도 자부심이 생겼다. 회사에 대한 자부심과 소속감은 내 시간을 쪼개서라도 공부를 하게 만드는 힘이 됐다.

특별했던 건,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엔지니어들과 술자리를 함께한다는 것이었다.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개인적으로 연락도 했다. 더 신기했던 건 그 술자리에 끼어 있는 것만으로도 시스템 엔지니어 기술을 쉽게 배울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놀면서 배우는 기술이라니.” 하루하루가 정말 즐거웠다. 금방이라도 그들과 같은 레벨이 된 것 같은 착각에 자존감이 하늘을 찔렀다. 지금의 내가 열심히 하는 멘티들을 보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는데, 그땐 그 엔지니어들 눈에 내가 딱 그런 모습이었을 거다.

카드 빵꾸는 왜 나는 거야? 난 돈을 버는데..

첫 직장에서 열심히 일한 만큼, 노는 것도 열심히 놀았다. 그동안 10년간 제대로 놀아보지 못한 데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했다. 마침 학점은행제도 병행하고 있었는데, 한 학기 인강만 들으면 졸업장이 나오는 시점이었다.

시스템 엔지니어는 늘 노트북을 들고 고객사로 이동해야 하는 직무다. 나는 그 이동 시간을 역이용했다. 오가는 틈틈이 노트북으로 인강을 봤다. 그때만 해도 통신사 무제한 요금제가 없던 시절이라 버스나 지하철에서는 보기가 힘들었고, 카페나 회사 건물 로비의 와이파이를 이용했다.

이렇게 시간을 알뜰히 쓴 덕분인지 퇴근 후엔 시간이 많이 남았다. 그래서 약속이 생기면 언제든 응할 수 있었는데, 보통은 술 약속이었다. 한잔하자는 친구의 제안에 흔쾌히 나갔다. 백수, 취준생 시절엔 매번 얻어먹거나, 돈이 없어 약속을 거절해야 했다. 그 설움 때문이었는지 약속을 무리하게 잡고 술값을 혼자 계산하는 게 그렇게 좋았다. 월급이 따박따박 들어오니 사고 싶은 옷도 마음껏 샀고, 먹고 싶은 것도 맘껏 먹었다.

문제는 카드 명세서를 받아 들었을 때였다. 결제할 때마다 예상 카드값을 문자로 알려주니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냥 무시했을 뿐이다. 씀씀이는 점점 커졌다. 모이는 돈은 없었고, 급기야 대출까지 끌어다 써야 할 지경이 됐다. 돈을 버는데도 카드는 자꾸 빵꾸가 났다.

당시 연봉 1800,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때 내 연봉은 1800이었다. ‘대졸자였다면 같은 회사에서도 더 높은 연봉을 받았을 텐데. 대기업이었다면 좀 더 여유롭게 쓸 수 있었을 텐데.’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결국 내가 원하는 건 분명했다. 더 높은 연봉과 더 나은 대우. 그리고 나는 그걸 석사학위가 해결해 줄 거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실력이 늘수록 욕심은 더 커졌다. 기술력이 좋아질수록 자존감도 같이 올라갔고, 못 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도전하자고 마음먹었다. 이미 대학원 진학 계획은 머릿속에 있던 터였다. “그래, 좀 더 빨리 계획을 실행하자.” 그렇게 마음을 굳히고 나니, 그때부터는 정보를 캐치하는 속도부터 달라졌다.

신났던 첫 직장이 나에게 남긴 것

지금 돌아보면 첫 직장은 두 얼굴을 가진 시절이었다. 한쪽에는 밤을 새워도 즐거웠던 성장의 기쁨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자꾸만 빵꾸 나던 카드값과 1800이라는 현실이 있었다. 둘 다 분명한 내 모습이었다.

강소기업에서 좋은 사람들과 일하며 실력을 키운 건 분명한 행운이었다. 하지만 그 행운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그 갈증이 나를 다음 단계로 떠밀었다. 만약 그때 카드값에 놀라지 않았다면, 1800이라는 숫자 앞에서 머릿속이 복잡해지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그 자리에 더 오래 머물렀을지도 모른다. 결국 신났던 첫 직장은 나에게 기술과 자존감을 주었고, 동시에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는 다음 목표를 심어주고 떠나보냈다. 그렇게 나는 석사라는 새로운 문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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