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학점은행제로 학위를 설계하다 (28살, 첫 IT 취업)

[자서전] 학점은행제로 학위를 설계하다 (28살, 첫 IT 취업)

목차

나는 27살까지 고졸이었다. 초·중·고 평균은 잘 쳐줘야 60점, 그런 내가 4수까지 했지만 결국 손에 쥔 건 서울대 합격증이 아니라 입영 통지서였다. 군대를 전역하고 나니 어느새 25살. 아무것도 이루어 놓은 게 없는 놈이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웹 프로그래밍 학원을 여러 군데 다니며 개발자를 꿈꿨다. 하지만 취업의 문은 높았고, 나의 가방끈은 짧았다.

학위를 설계하다
사진: Pexels / RDNE Stock project

100군데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전화가 온 곳은 단 한 곳, 그마저도 탈락이었다. 이력서를 넣으면서 주변 지인들에게 늘 들었던 얘기가 있다. “IT 쪽으로 취직하려면 4년제 대학 졸업 증명서는 필수다”라는 말이었다. 물론 졸업장이 확실한 취업의 열쇠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는, 적어도 면접장 문턱이라도 넘으려면 그 종이 한 장이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나는 대학을 ‘가는’ 대신 학위를 ‘설계’하기로 했다. 그 방법이 바로 학점은행제였다. 이건 일반적인 안내서가 아니라, 27살 고졸이 어떻게 학점은행제로 4년제 학위를 만들고 28살에 첫 IT 회사에 들어갔는지에 대한 내 이야기다.

대학 타이틀이 필요했던 나의 선택

요즘은 대학을 졸업해도 취직이 쉽지 않다. 전국 대학의 평균 등록금이 600여만 원이라는데, 4년이면 학비만 수천만 원이다. 그렇게 투자해도 첫 연봉은 그에 한참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 입시 뉴스에서 서울대 수시모집 학과가 미달 났다는 소식까지 들려오던 때였다. 똑똑하다는 친구들조차 대학을 망설이는 시대에, 나 같은 고졸이 비싼 등록금을 4년이나 내며 정식 대학에 들어갈 이유를 찾기는 어려웠다.

내게 필요한 건 4년이라는 시간도, 수천만 원이라는 돈도 아니었다. 딱 ‘4년제 학사 학위’라는 결과물 하나였다. 그래서 세 번째 국비지원 학원이었던 정보 보안 학원을 다니기 시작할 무렵, 학점은행제를 함께 시작했다. 당시 내 나이 27살이었다.

정보 보안 학원을 시작하기 전부터 나는 학점은행제를 위한 평생교육진흥원에 가입을 해두었다. 그리고 최소한의 기간으로 학위를 취득하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 학점 평점의 높고 낮음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목표는 ‘졸업장’이지 ‘성적표’가 아니었으니까. 최적의 전략은 인터넷 수업, 자격증, 독학사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끌어다 쓰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방법을 관통하는 핵심은 단 하나, 중복되지 않게 학점 계산을 잘하는 것이었다.

141학점을 어떻게 설계했나

학사 학위를 받으려면 정해진 영역별로 학점을 채워야 한다. 나는 그 칸들을 세 가지 취득 방법으로 나눠서 메웠다. 실제로 내가 학점은행제에 등록한 학점 내역은 이렇다.

학점 취득원전공필수전공선택교양일반선택
평가 인정 학습과정(인강)612363084
자격(자격증)1400014
독학학위제 시험 합격5308043
합계25424430141
(표 1) 학점은행제에 실제 등록한 학사 학위 학점 내역 (총 141학점)

표만 보면 무미건조하지만, 저 칸 하나하나에 내 1년 반이 들어가 있다. 각각이 어떤 방법이었는지 풀어보겠다.

평가 인정 학습과정 — 시간 날 때마다 듣던 인강

평가 인정 학습과정은 쉽게 말해 인터넷 강의로 수업을 듣는 것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인강을 들었고, 바쁠 때는 인강을 켜놓고 출석 체크만 한 뒤 교재로 빠르게 공부했던 기억이 난다. 장점은 언제 어디서든 노트북만 있으면 가능하다는 것. 단점은 과목당 최고가 3점이고, 한 학기에 21학점(7과목)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한 과목당 중간 과제, 기말 과제, 중간고사, 기말고사 총 네 번의 이벤트가 있어서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 비용은 과목당 저렴한 건 9만 원, 비싼 건 30만 원까지 있었다. 교양과 일반 강의는 대체로 9만~12만 원 정도면 들을 수 있었지만, 전공 수업은 21만 원 정도 줬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이 방법으로만 84학점을 채웠다. 가장 많은 비중이었다.

자격 — 자격증 하나로 14학점

‘자격’은 말 그대로 자격증이다. 나는 컴퓨터 활용능력 1급을 목표로 준비했는데, 어렵지 않게 취득했다. 60점만 맞으면 합격이다. 준비 기간은 약 한 달, 하루에 한두 시간 정도 투자해서 땄다. 그에 비해 14학점을 한 번에 받는다는 건 굉장히 큰 이점이다. 비용도 응시료 다 합쳐 3만 원 정도로 아주 저렴했다.

다만 함정도 있다. 떨어지면 다음 시험 날짜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학위 목표일을 정해놓고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이게 계획에 차질을 줄 수 있다. 시험이 필기와 실기로 나뉘어 있어서 하나라도 불합격하면 일정이 통째로 꼬인다. 인강은 점수가 낮아도 그냥 학점 받고 넘어가면 그만이지만, 자격증은 합격 아니면 0이라 그렇지가 않다.

독학학위제 — 학위 취득을 단번에 줄여준 고속 열차

독학학위제, 흔히 말하는 독학사 시험은 내 학위 취득 기간을 단번에 줄여준 고속 열차 같았다. 시험 비용도 굉장히 저렴했고, 자격증과 인터넷 수업의 장점만 가져온 시험 같았다.

간단히 설명하면, 대학 전공·교양·일반 과목을 1년에 네 번으로 나눠 시험을 연다. 각 시험은 1학년, 2학년, 3학년, 4학년 시험으로 보면 된다. 학년마다 6개 과목이 정해져 있고, 모든 과목을 합격하면 학사학위를 준다. 예를 들어 1학년에서 3과목을 합격하고 2·3학년에서 6과목을 다 합격했다면, 다음 해에 1학년 남은 3과목을 마저 합격해야 4학년 시험을 볼 수 있는 식이다.

독학사만 단독으로 진행한다면 수준이 꽤 높은 시험이다. 체감상 공무원 시험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학점은행제와 연동하면 이 장벽을 굉장히 낮출 수 있다. 1학년 시험은 과목당 4점, 2·3학년 시험은 과목당 5점씩 인정되는데, 커트라인은 60점이고 일단 합격하면 60점이든 100점이든 똑같은 점수로 취급된다. 그러니 100점을 노릴 이유가 없었다. 나는 이 독학사 시험으로 1년 만에 43학점을 쓸어 담았다.

정리하면, 인강을 1년 반 동안 들으면서 그 사이사이에 자격증과 독학사 시험을 합격하는 방식으로 학사학위를 완성했다. 세 가지 방법을 동시에 굴린 셈이다.

총 700만 원, 그 안에 다 들어 있었다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그래서 돈은 얼마나 들었냐”는 것이다. 나는 1년 6개월 동안 학원·학점은행제·자격증·생활비까지 다 합쳐서 고작 700만 원가량을 썼다. 이게 어떻게 가능했냐면, 핵심은 국비지원이었다.

나는 국비지원 학원을 세 군데 다녔다. 웹디자인 4개월, JAVA 프로그래밍 6개월, 정보 보안 6개월으로 총 1년 4개월이었다. 학원비 총액은 500만 원 정도였는데, 국가에서 매달 16만 원씩 용돈도 받았다. 4개월·6개월·6개월을 합치면 256만 원이다. 결국 국비지원으로 약 440만 원을 충당했고, 내가 실제로 부담한 자비는 60만 원 정도였다.

  • 국비지원 학원 3개: 웹디자인(4개월) · JAVA 프로그래밍(6개월) · 정보 보안(6개월) — 학원비 약 500만 원
  • 국가 지원 용돈: 월 16만 원 × 16개월 = 약 256만 원
  • 국비지원으로 충당한 금액: 약 440만 원 → 자비 부담은 약 60만 원
  • 자격증(컴퓨터 활용능력 1급 등): 응시료 약 3만 원으로 14학점
  • 1년 반 동안 학원비·생활비 포함 총 사용액: 약 756만 원 (월평균 약 50만 원)

지금 와서 보면 4년제 대학에 정식으로 다녔다면 등록금만으로도 몇 배는 더 들었을 돈이다. 나는 그 돈과 시간을 아껴서, 학원에서 실무 기술을 배우는 동시에 학위까지 만들었다. 한 줄로 요약하면 ‘월 50만 원으로 학위와 기술을 동시에 산 셈’이다.

학위 설계가 28살의 첫 취업으로 이어지다

학점은행제 기간 중 6개월은 정보 보안 학원 수업과 병행했고, 나머지 1년은 회사 업무와 병행했다. 그렇게 학점을 차곡차곡 쌓아 4년제 대학 졸업장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 나를 좋게 봐주시던 학원 강사님의 추천으로 겨우 20명 남짓의 작은 중소기업 IT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100군데에서 거절당하던 고졸이 드디어 명함을 갖게 된 순간이었다. 그때 내 나이 28살이었다.

당연히 첫 연봉은 터무니없이 적었다. 하지만 좋은 사람들이 많았고, 커리어를 쌓고 비전을 키울 수 있는 회사였다. 회사 자체도 그 분야에서 매년 상을 받을 만큼 실력 있는 곳이어서, 다니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생겼다. 나는 거기서 내로라하는 엔지니어들과 어울리며 술자리에서 전화번호를 나누고, 놀듯이 기술을 배웠다. 놀면서 배우는 기술이라니, 하루하루가 정말 즐거웠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연봉 협상을 할 때, 나는 다시 한번 학력의 벽을 느꼈다. 학점은행제로 분명 4년제 학위를 취득했는데도, 사내 규정상 고졸과 똑같은 연봉 테이블로 측정된다고 했다. 그래도 1년간의 성과를 인정받아 20%가 인상됐지만, 여전히 2천만 원 중반대의 연봉이었다.

학점은행제는 나를 면접장 안으로 들여보내 줬고, 첫 직장을 안겨줬다. 거기까지는 완벽한 성공이었다. 하지만 회사는 그 학위를 ‘대학 졸업’으로 온전히 인정해 주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한 번 더 욕심을 냈다. 이번엔 대학원에 들어가 석사 학위를 취득하는 것이었다. 사실 연봉 협상 전부터 대학원 정보를 꾸준히 모으고 있었으니, 어쩌면 나는 무리를 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무리는 나중에 꽤 큰 후폭풍이 되어 돌아온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는 ‘안 되는 길’을 붙잡고 있었던 게 아니라 ‘되는 길’을 직접 설계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남들이 정해준 코스가 아니라, 내가 가진 정보 안에서 가장 빠르고 저렴한 루트를 찾아 학위라는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60점짜리 고졸이 28살에 첫 IT 개발자가 되기까지, 그 시작점은 결국 “내 길에는 대학 타이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타이틀을 내 방식대로 손에 넣기로 결심한 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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