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개발자 재도전과 ’60점 전략’

[자서전] 개발자 재도전과 '60점 전략'

목차

회사를 일주일 만에 박차고 나온 뒤, 내 머릿속엔 딱 하나만 남아 있었다. 다시 개발자로 제대로 준비해보자는 것. 생활비와 학원비가 가장 큰 걱정이었지만, 그래도 길은 있었다. 국비 지원이라는 카드가 있었으니까. 이번 편은 다시 개발 공부에 뛰어든 이야기,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평생 가져가게 된 ’60점 전략’에 대한 기록이다.

개발자 재도전과 공부
사진: Pexels / Pixabay

디자인과 프로그래밍이 뒤섞인 국비 학원

국비 지원을 통해 한 개발자 양성 학원에 등록했다. 커리큘럼을 보니 디자인과 프로그래밍이 묘하게 섞여 있어서 좀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국비 100% 지원이라는 말에 별생각 없이 넘어갔다. 돈 한 푼 안 들이고 배울 수 있다는데, 그땐 그게 제일 컸다.

첫 달은 디자인 수업이었다. 이미 한 번 배운 적이 있던 터라 그럭저럭 어렵지 않게 지나갔다. 여기까지만 해도 별 의심 없이 흘러갔다. ‘이대로 가면 되겠구나’ 싶었다.

강사가 사라진 교실

문제는 두 번째 달이었다. 예정되어 있던 프로그래밍 수업을 맡기로 한 강사가 갑작스럽게 그만뒀다. 학원은 새 강사를 수배할 때까지 자율학습으로 진행하겠다고 했다. 처음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같은 반에 나이가 좀 있는 누나, 형들이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학원 입장에서는 강사가 없으면 그만큼 비용을 아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시간만 낭비하는 거였다. 피해를 보는 건 결국 우리였다. 그때부터 우리는 매번 찾아가서 강사를 요구했다. 그렇게 두 달이 흐르고, 네 번째 달부터 세 달 동안 프로그래밍 교육을 듣긴 들었다. 하지만 퀄리티는 정말 낮았다.

결국 제대로 배우지 못한 채 학원을 수료했다. 일반적이라면 수료할 때쯤엔 간단한 프로그램이라도 하나 만들어봤을 텐데, 그런 게 하나도 없었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이 그렇게 흐지부지 수료했다. 그리고 학원은 국가에서 지원받은 학생들의 학원비를 그대로 꿀꺽했다.

이력서를 낼 수조차 없었다. 실력도, 결과물도 없었기 때문이다. 분명 시간을 들였는데 손에 쥔 게 아무것도 없는 그 허탈함. 지금 돌아봐도 답답한 시절이었다.

변태적으로 자격증을 모으기 시작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웹디자인과 프로그래밍을 배우면서 나는 몇몇 자격증을 취득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배운 것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자는 의미였고, 동시에 이력서에 내가 가진 기술을 증명하는 데 자격증만 한 게 없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나는 거의 변태적으로 자격증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나둘 모으다 보니 지금까지 취득한 자격증이 20개 정도 된다. 자격증을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기술과 지식을 습득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 단순히 종이 한 장을 얻는 게 아니라, 그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다시 정리하고 다시 외우는 그 과정이 나를 다듬어줬다.

정보보안 학원, 4:1 경쟁률을 뚫다

부실했던 학원을 수료할 무렵, 학원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흥미로운 정보를 들었다. 해커를 양성하는, 즉 정보보안을 전문으로 가르치는 학원이 있다는 것이었다. 강의 퀄리티가 좋기로 유명한 곳이었고, 국비 지원도 가능했다. 귀가 솔깃했다.

나는 앞선 개발자 양성 학원을 수료하자마자 곧장 그 정보보안 학원에 등록했다. 이 과정도 6개월짜리였다. 앞선 학원과 달리 이곳은 강사들의 실력이 확실히 뛰어났다. 좋은 환경에서 좋은 지식을 얻으려는 학생들이 몰려들 정도였다.

그런데 받아줄 수 있는 학생 수는 정해져 있었고, 학원은 수준이 높은 학생들만 받으려 했다. 한정된 인원을 뽑으려면 선정 기준이 있어야 했다. 학원인데도 입학 시험이 있었던 것이다. 시험 과목은 컴퓨터 관련 4가지 정도였다.

다행히 그 시험 범위는 내가 자격증을 준비하고 학점은행제를 시작하면서 이미 다 배운 내용들이었다.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4:1의 경쟁률을 뚫고 당당하게 합격했다. 그동안 변태적으로 모아온 자격증과 공부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부실한 학원에서 허비한 줄 알았던 시간조차, 결국 어딘가에서는 쓸모가 있었던 셈이다.

자격증처럼 인생도 딱 60점만 맞아라

여기서 내 인생의 가치관을 바꿔놓은 깨달음 하나를 이야기하고 싶다. 자격증을 모으다 보니 한 가지 사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취득한 자격증들의 합격 최소 점수는 대부분 100점 만점에 60점 정도였다. 그리고 나는 거의 모든 자격증을 60점에서 70점 사이로 합격했다.

정보보안 학원의 입학 시험도 마찬가지였다. 그곳은 시험 점수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다. 오직 합격 여부만 있었다. 하지만 내 생각엔 난이도가 비슷했고, 나는 그 합격선을 넘어 들어갔다. 100점이 아니어도 합격은 합격이었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자존감이 오히려 더 올라갔다. 그 이후로 나는 100점에 연연하지 않게 됐다. 적당한 선까지만 노력하고, 대신 꾸준히 하자는 가치관이 생겨난 것이다. 모든 걸 100점으로 채우려다 지쳐 나가떨어지는 것보다, 합격선을 넘기고 다음으로 넘어가 더 많은 것을 경험하는 편이 낫다는 걸 몸으로 배웠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지 않고도, 자신의 적당한 위치를 파악하라. 물론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는 있을 수 있다. 그러니 많은 것을 알아보고, 최대한 많이 시도해 보라. 그리고 한번 한 선택에는 후회하지 마라. 그때 당시의 선택은 자신이 아는 정보 안에서 내릴 수 있었던 가장 최선의 선택이었으니까.

그 선택들로 인해 여러 번의 경험이 누적됐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실패의 경험을 이겨냈기 때문에, 지금은 더 좋은 선택지를 고를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60점이면 일단 통과하고, 그다음을 보면 된다.

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라

여기에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게 있다. 나는 늘 ‘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려고 했다. 100% 불안정하다는 말은 아니다. 그저 완전히 안주하지는 않는 상태, 약간의 결핍을 일부러 남겨두는 상태다.

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면 늘 정보에 목이 마르다. 그렇게 갈증을 느끼며 계속 정보를 찾다 보면, 의외로 어렵지 않은 성공 루트를 찾아내게 된다. 부실한 학원에서 흐지부지 수료하고도 다음 길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결국 그 갈증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돌아보며

지나고 보니, 그 시절의 나는 참 많은 길을 돌아왔다. 디자인과 프로그래밍도 구분 못 하던 시절을 지나, 강사가 사라진 교실에서 시간을 허비하기도 했고, 변태적으로 자격증을 모으며 다시 일어서기도 했다. 그 모든 과정이 결국 ‘딱 60점만 맞아라’라는 내 나름의 인생 전략으로 이어졌다.

완벽을 좇다 멈춰 서기보다, 합격선을 넘기고 계속 나아가는 것. 약간의 불안정함을 연료 삼아 끊임없이 정보를 찾는 것. 이 두 가지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혹시 지금 무언가를 완벽하게 해내지 못해 자책하고 있다면, 한 번쯤 60점을 떠올려보길 바란다. 일단 통과하고, 그다음을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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