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과 2024년에 걸쳐 테크 업계를 중심으로 대규모 인원 감축이 이어졌다. 표면적 이유는 다양했지만 공통된 맥락 중 하나는 “AI로 대체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2025년 이후, 일부 기업들이 같은 직무 또는 유사 직무로 재채용에 나서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이 흐름을 단순히 “AI가 생각만큼 안 되네”로 읽는 것은 너무 얕은 해석이다. 실제로는 AI 도입이 가속화될수록 특정 인간 역량의 수요가 오히려 높아지는 구조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 글은 그 구체적인 배경과 흐름을 살피고, 커리어 관점에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실질적인 방향을 제시한다.
AI 해고 후 재고용, 무슨 일이 있었나
IBM은 2023년 백오피스 특정 직무 수천 개를 AI로 대체할 수 있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이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데이터 관련 직군 채용을 다시 늘리고 있다는 보도가 여러 매체를 통해 나왔다. 공식적으로 정확한 수치가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AI 인프라를 구축하고 운용하는 데 오히려 더 많은 기술 인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설명이 업계에서 회자되고 있다.
듀오링고는 2024년 초 콘텐츠 제작 계약직 일부를 AI로 대체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반복 제작 업무는 상당 부분 자동화로 전환되었지만, UX 리서처나 제품 관리자 채용 공고는 꾸준히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AI가 콘텐츠를 생성해도, 그 결과물의 품질을 판단하고 학습 경험을 설계하는 사람은 여전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들이 공통적으로 시사하는 것이 있다. AI는 반복적이고 명확히 정의된 작업을 빠르게 처리한다. 하지만 그 작업이 실제 비즈니스 맥락에서 의미 있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일—기획, 판단, 조율, 설명—은 여전히 사람의 영역으로 남는다. 감원 후 재채용은 기업들이 이 사실을 직접 경험하며 방향을 수정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AI가 실제로 대체하고 있는 업무는 무엇인가
막연하게 ‘AI가 일자리를 빼앗는다’고 불안해하기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이 대체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다. 현재 AI 도구들이 실질적으로 처리하는 범위는 다음과 같다.
- 정형화된 문서 초안 작성: 이메일, 보도자료, 표준 계약서 초안, 보고서 요약
- 데이터 정리 및 기초 분석: 스프레드시트 패턴 탐색, 단순 코드 변환, 대량 번역
- 이미지·영상 기초 편집: 배경 제거, 자막 생성, 표준화된 SNS 콘텐츠 포맷 변환
- 콜센터 1차 응대: FAQ 기반 답변, 티켓 분류 및 우선순위 지정
- 정형 코드 생성: 반복적인 함수 작성, 테스트 코드 기초 생성
이 작업들의 공통점은 ‘입력-출력이 비교적 명확하다’는 것이다. 정답의 범위가 있고, 실수가 허용되는 환경이며, 판단보다 처리 속도가 중요한 경우에 AI는 강력하다. 반면 판단 기준이 복잡하거나, 결과에 책임이 따르거나, 사람 관계가 개입되는 순간 AI의 한계가 드러난다.
AI 시대에도 흔들리지 않는 커리어의 공통 조건
AI로 대체되지 않는 직군을 나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 “어떤 능력을 가진 사람이 대체되지 않는가”다. 직군 자체보다 그 안에서 무엇을 하느냐가 내 일의 대체 가능성을 결정한다.
첫째, 복잡한 맥락을 읽고 판단하는 능력이다. AI는 주어진 데이터와 지시를 처리하지만, 맥락을 종합해 ‘지금 이 상황에서 어떤 결정이 옳은가’를 판단하는 것은 다르다. 클라이언트의 말 속에 담긴 진짜 니즈를 파악하거나, 팀 내 갈등 구조를 읽고 해법을 찾는 일이 그 예다.
둘째, 관계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통 능력이다. 중요한 계약 협상, 심리 상담, 코칭, 고객 관계 관리—이런 일에서 신뢰는 사람이 만든다. AI가 스크립트를 제공할 수 있어도, 그 신뢰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과정은 대체되지 않는다.
셋째, AI 도구를 활용해 결과물의 품질과 생산성을 높이는 능력이다. 역설적으로, AI를 잘 다루는 사람이 AI를 못 다루는 사람을 대체하는 시대가 되었다. AI를 단순히 사용하는 것을 넘어, 어떤 프롬프트가 더 나은 결과를 내는지, AI의 결과를 어떻게 검토하고 조합할지를 판단하는 사람이 유리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커리어가 지속 가능한가
직군을 기계적으로 분류하기보다 현실에서 수요가 유지되거나 늘어나고 있는 방향을 살펴보는 것이 더 실용적이다.
AI와 협력하는 전문직. 법률, 의료, 회계 분야에서는 AI가 문서 검토, 진단 보조, 세무 계산 일부를 처리한다. 하지만 최종 판단, 책임, 클라이언트와의 소통은 전문가 몫이다. 오히려 이 분야에서는 AI 도구를 빠르게 습득하고 자신의 전문성과 결합하는 사람이 생산성 격차를 크게 벌린다.
제품·서비스 기획과 UX 설계. ‘무엇을 만들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일은 AI가 대신할 수 없다. 사용자 인터뷰, 요구사항 정의, 우선순위 판단, 이해관계자 설득—기획자와 UX 디자이너가 하는 핵심 업무는 맥락과 판단의 연속이다. AI는 이 과정을 지원하지만, 방향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교육, 코칭, 상담. 사람이 변화하는 과정에는 신뢰와 관계가 필수다. 멘토가 멘티의 맥락을 이해하고 피드백을 조정하는 과정, 상담사가 내담자의 감정을 읽으며 대화를 이끄는 과정은 AI가 흉내 낼 수 있어도 대체하기 어렵다. 학습 플랫폼들이 AI 기반 개인화를 강화하는 동시에 라이브 코칭 수요가 줄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영업과 파트너십 관리. 고가의 B2B 계약이나 전략적 파트너십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장기 관계에서 나온다. 자동화된 이메일 시퀀스가 1차 접점을 처리해도, 실제 계약을 성사시키는 것은 사람 간의 대화다. 복잡한 니즈를 파악하고 맞춤형 제안을 구성하며 관계를 유지하는 영업 역량은 오히려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
방향을 파악했다면 지금 어떻게 움직일 것인지가 남는다. 아래는 현실적으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단계들이다.
- 현재 업무 중 AI로 처리 가능한 부분을 직접 실험해본다. ChatGPT, Claude 등 생성 AI 도구로 자신의 업무 일부를 시험해보면, 어떤 작업이 대체되고 어떤 판단은 여전히 자신이 해야 하는지 체감할 수 있다. 이 과정 자체가 AI 활용 역량을 키우는 훈련이 된다.
- ‘T자형 역량’ 구조를 점검한다. 한 분야의 전문성(깊이)과 인접 영역에 대한 이해(너비)를 함께 갖춘 사람이 AI와 협력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자신의 전문 영역과 인접 도메인—AI, 데이터, 커뮤니케이션—중 부족한 부분을 파악하고 채워가는 계획을 세운다.
- AI가 만든 결과물을 판단하는 훈련을 한다. AI 아웃풋을 그대로 사용하는 사람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개선할 수 있는 사람의 차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진다. 특히 사실 관계, 맥락 적합성, 어조의 적절함을 점검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 커리어 네트워크를 넓힌다. 같은 산업 내에서도 AI 전환의 속도와 방식이 다르다. 현직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분야에서 실제로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뉴스 기사보다 훨씬 정확한 정보를 준다.
-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에 투자한다. AI가 답을 내는 속도는 빠르지만, 올바른 질문을 만드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일이다.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하는지, 왜 그것이 중요한지를 명확히 하는 훈련—글쓰기, 구조화 사고, 이해관계자 인터뷰—이 장기적으로 가장 내구성 있는 역량이다.
불안 대신 선택이 필요한 시점
AI 시대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종종 두 극단 사이를 오간다. “AI가 모든 일자리를 대체한다”거나 “AI는 별거 아니다”거나. 어느 쪽도 현실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는다. 실제로는 특정 작업은 빠르게 자동화되고, 어떤 역할은 방식이 달라지며, 일부는 더 희소해진다. 이 변화의 속도와 패턴은 산업마다, 직군마다 다르다.
커리어를 고민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내 일이 대체될까’라는 막연한 불안이 아니라, ‘내 일의 어떤 부분이 달라지고 있고, 나는 어떤 방향으로 역량을 쌓을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질문이다. AI가 해고 후 다시 사람을 부르는 현장을 보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은 그것이다. 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고, 거기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는 각자의 몫이다.
누스쿨에서는 지금 이 고민을 함께 풀어가는 커뮤니티와 현직자 멘토링을 운영하고 있다. AI 전환 시대에 자신만의 커리어 방향을 찾고 싶다면, 혼자 고민하는 대신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이미 변화 속에서 방향을 잡은 멘토들과 직접 이야기해보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