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채용이 늘었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나는 개발자가 아니니까 관계없겠지”라고 넘기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실제 채용 시장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AI 기반 서비스를 만들고 운영하는 조직에서 지금 가장 빠르게 수요가 늘어나는 직군은 기획자, 프로덕트 매니저(PM), 서비스 디자이너, AI 윤리 및 정책 담당자처럼 기술과 맥락을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인재들이다. 왜 이런 흐름이 생겼는지, 그리고 비개발자로서 이 흐름에 올라타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AI가 만들어낸 새로운 역할의 공백
생성형 AI 기술이 성숙해지면서 조직 내부의 고민도 달라졌다. 이전에는 “AI 모델을 어떻게 만드는가”가 핵심 질문이었다면, 지금은 “이 AI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쓰는가”, “결과물이 실제 사용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 “어떤 기준으로 AI의 응답을 판단해야 하는가”로 질문이 이동했다. 이 질문들은 코드로 답할 수 없다. 사람과 서비스에 대한 이해, 판단 기준 설계, 이해관계자와의 조율이 필요하다.
이 공백을 채우는 것이 기획자와 설계 인재의 역할이다. AI 스타트업부터 대기업 AI 조직까지, 이들이 공통적으로 찾는 것은 AI의 작동 원리를 어느 정도 이해하면서도 사용자와 비즈니스 맥락을 조율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 교차점이 넓어질수록 비개발자의 기회도 함께 커진다.
실제로 어떤 직군이 주목받고 있는가
현재 AI 관련 채용 공고에서 자주 등장하는 비개발 직군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AI 프로덕트 매니저(AI PM): AI 기능의 사용자 경험을 설계하고, 개발팀과 사업팀 사이에서 요구사항을 번역하는 역할. 머신러닝 모델을 직접 만들지 않아도 되지만, 모델의 한계와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 프롬프트 디자이너 / LLM 콘텐츠 설계자: 생성형 AI가 일관되고 유용한 결과를 내도록 프롬프트 구조와 가이드라인을 설계한다. 언어 감각, 사용자 심리, 도메인 지식이 핵심 역량이다.
- AI 정책·윤리 담당자: AI 서비스의 편향, 개인정보, 책임 소재 등을 검토하고 내부 원칙을 수립한다. 법무, 인문사회, 정책학 배경을 가진 인재들이 진입하고 있는 영역이다.
- 데이터 스튜어드 / 어노테이터 리드: AI 학습 데이터의 품질을 관리하고, 어노테이션 기준을 만들며, 현장 팀을 운영한다. 도메인 전문성(의료, 법률, 교육 등)이 있으면 강점이 된다.
- 서비스 기획자(AI 도입 기업 내부): 기존 서비스에 AI를 접목하는 전환 기획을 담당한다. 사내 AI 도입 프로젝트의 수가 늘면서 이 역할의 수요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
공통점이 있다. 이 모든 역할은 AI를 ‘도구’로 다루되, 그 도구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사람 중심으로 설계하고 책임지는 일이다. 개발보다 의사결정과 조율에 더 많은 시간을 쓴다.
기획·설계 인재에게 요구되는 것이 달라졌다
그렇다고 AI 조직이 기존 기획자를 그대로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요구하는 역량의 구성이 달라졌다. 기존 기획에서는 경쟁사 벤치마킹, 기능 명세서 작성, UX 플로우 설계가 핵심이었다면, AI 조직에서는 거기에 다음이 추가된다.
- AI 모델의 작동 방식과 한계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 (예: 모델이 왜 틀리는가, 어떤 상황에서 신뢰도가 낮아지는가)
- 데이터 흐름에 대한 개념 이해 (데이터가 어디서 오고, 어떻게 처리되는가)
- AI 산출물을 평가하는 기준 설계 능력 (좋다/나쁘다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 빠른 실험·반복 사이클에 적응하는 업무 방식
이 역량들은 상당 부분 학습으로 채울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코딩을 마스터하는 것이 아니라, AI와 협업하고 AI가 만들어내는 결과물을 판단할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다.
또한 도메인 전문성은 여전히 강력한 무기다. 의료, 법률, 교육, 금융 같은 분야에서 AI 서비스를 기획할 때, 해당 도메인을 이해하는 기획자는 AI 기술자보다 훨씬 빠르게 문제를 정의하고 솔루션의 실현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다. AI 스타트업들이 이 영역에서 비개발자를 적극적으로 채용하는 이유 중 하나다.
비개발자로서 AI 관련 역할에 진입하는 현실적인 경로
막연하게 “AI 역량을 키워야지”라는 결심보다 중요한 것은 구체적인 진입 경로를 설정하는 것이다. 아래 단계는 현실적으로 시도할 수 있는 흐름이다.
- 1단계 – AI 도구를 실무에 직접 써본다: ChatGPT, Claude, Notion AI, Midjourney 등 생성형 AI 도구를 현재 내 업무에 실제로 적용해본다. 어디서 유용하고 어디서 실패하는지를 직접 경험하는 것이 이론 공부보다 훨씬 빠른 이해를 만든다. 이 경험이 나중에 면접에서도 구체적인 언어로 표현된다.
- 2단계 – AI 서비스의 기획 관점에서 분석해본다: 평소 자주 쓰는 AI 서비스를 사용자 경험 관점에서 분석해본다. 어떤 입력에 어떤 결과를 내는가, 어떤 상황에서 사용자가 이탈할 것 같은가, 어떤 기준으로 응답의 품질을 판단하는가. 이 분석을 짧은 문서로 정리해두면 포트폴리오가 된다.
- 3단계 – AI 기초 개념을 익힌다 (코딩 없이도 가능): 머신러닝의 기본 원리, 대형 언어 모델(LLM)의 작동 방식, 프롬프트 엔지니어링의 개념 정도는 비개발자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자료가 충분히 나와 있다. 공식 문서나 입문 강의를 통해 용어와 개념을 익혀두면 개발자와의 협업에서 대화가 달라진다.
- 4단계 – AI 관련 프로젝트 경험을 만든다: 현재 다니는 직장에서 AI 도구 도입 제안서를 작성하거나, 사이드 프로젝트로 AI 서비스의 UX 개선안을 만들어본다. 실제 결과물이 없어도 과정과 사고 방식을 정리한 문서가 포트폴리오 역할을 한다.
- 5단계 – AI 조직의 채용 공고를 정기적으로 분석한다: 관심 있는 AI 기업의 채용 공고를 주기적으로 읽으면서, 요구하는 역량과 경험의 패턴을 파악한다. 공고에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를 자신의 이력서 언어로 전환하는 연습을 한다.
이력서와 면접에서 실제로 통하는 언어
AI 관련 비개발 역할에 지원할 때, 많은 사람이 “저는 AI를 잘 모르지만 배우고 싶습니다”라는 방식으로 접근한다. 이 접근은 효과가 낮다. 채용 담당자가 원하는 것은 학습 의지가 아니라, 지금 당장 이 역할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다.
대신 이렇게 접근하면 달라진다. “저는 ○○ 업무에서 AI 도구를 활용해 ○○를 개선한 경험이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모델이 어떤 입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결과물을 판단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직접 만들어보았습니다.” 이런 서술은 코딩 없이도 AI 협업 역량을 보여준다.
면접에서도 마찬가지다. 기획·설계 역할의 면접에서는 “이 AI 서비스에서 사용자가 가장 불편할 지점은 어디라고 생각하는가”, “이 기능의 AI 응답 품질을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같은 질문이 나온다. 이때 구체적인 프레임워크와 근거를 갖고 답하는 사람이 선택받는다. 실무에서 AI를 직접 써본 경험이 있으면 이 질문에 훨씬 자신 있게 답할 수 있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기
AI 채용 시장의 변화는 개발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기획자, PM, 서비스 디자이너, 콘텐츠 전략가, 도메인 전문가 등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에게 이전에 없던 역할이 생기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나는 개발자가 아니니까”라는 선입견을 먼저 내려놓는 것이다.
시작은 거창할 필요가 없다. 오늘 사용하는 AI 도구 하나를 더 깊게 써보는 것, 그 경험을 짧게 기록해두는 것, 관심 있는 AI 기업의 채용 공고를 한 번 들여다보는 것. 이 작은 행동들이 쌓이면 6개월 후 이력서의 언어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 언어의 차이가 취업·이직의 결과를 바꾼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면 누스쿨 커뮤니티에서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연결되어보자. AI 관련 커리어 전환을 고민 중인 기획자, 실제 AI 조직으로 이직에 성공한 선배들의 경험, 그리고 나의 현재 위치에서 다음 단계를 같이 설계해줄 멘토가 기다리고 있다. 방향이 명확해지면 준비가 훨씬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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