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만 해도 ‘AI 채용’이라고 하면 머신러닝 엔지니어,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딥러닝 연구자 같은 직함이 먼저 떠올랐다. 하지만 최근 기업들의 채용 공고를 들여다보면 분위기가 달라졌다. AI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서비스 흐름을 설계하고, 조직과 제품 사이에서 다리 역할을 하는 ‘비개발’ 직군에 대한 수요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개발자가 AI를 만드는 시대에서, 기획자와 설계자가 AI를 현실에 심는 시대로 옮겨가고 있다는 신호다.
기술보다 기획이 병목이 되고 있다
AI 모델 자체의 성능은 빠르게 상향 평준화되고 있다. 같은 API를 쓰더라도 서비스가 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기술력의 차이보다 기획력의 차이에서 갈린다. 어떤 사용자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문제를 겪는지 정의하고, AI가 그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게 할지 설계하는 일은 개발자가 혼자 담당하기 어렵다.
실제 현장에서 AI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이유로 가장 많이 꼽히는 것은 ‘모델 성능 부족’이 아니다. ‘어떤 문제를 풀어야 할지 정의하지 못함’, ‘현업 부서와 개발팀 간 소통 단절’, ‘사용자 경험 설계 부재’처럼 기획과 설계의 영역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기술은 준비됐는데 방향이 없거나, 방향은 있는데 현실과 맞지 않는 경우가 반복된다.
이 병목을 해소하는 사람이 바로 지금 AI 조직이 찾고 있는 인재다. 코드를 짜는 사람이 아니라, 무엇을 코드로 짜야 할지 정의하고 조율하는 사람.
어떤 직군이 실제로 채용되고 있나
링크드인, 원티드, 잡플래닛 같은 채용 플랫폼에서 ‘AI’, ‘LLM’, ‘생성형 AI’ 키워드가 붙은 공고를 살펴보면 개발자 외에 다음 직군들이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 AI 프로덕트 매니저(PM): AI 기반 제품의 로드맵을 정의하고, 개발팀·데이터팀·UX팀 간 조율을 담당한다. 기존 PM 역량에 더해 AI 서비스의 한계와 가능성을 현실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이 요구된다.
- AI 서비스 기획자: 챗봇, 추천 시스템, 자동화 워크플로 등 구체적인 AI 서비스를 사용자 관점에서 설계하는 역할이다. UX 라이팅과 프롬프트 설계 능력이 함께 평가되는 경우가 많다.
- 프롬프트 엔지니어 / AI 콘텐츠 설계자: LLM 기반 서비스에서 AI의 출력 품질을 기획 수준에서 통제하는 역할이다. 명칭은 다양하지만 핵심은 AI와 사람 사이의 언어 인터페이스를 설계하는 것이다.
- 비즈니스 애널리스트(BA) / AI 전략 기획: 도입 전후 효과를 측정하고, AI 투자 대비 실질적인 비즈니스 임팩트를 입증하는 역할이다. 경영·마케팅·재무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진입하는 경로 중 하나다.
- AI UX 디자이너: AI의 출력을 사용자가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와 경험 흐름을 설계한다. 기존 UX 디자인과 다른 점은 ‘결과가 확정적이지 않은 AI 출력’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공통점이 있다. 코딩이 필수는 아니지만, AI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못 하는지에 대한 실용적인 이해는 필수라는 것이다.
비개발자가 AI 직군에 들어가기 위해 실제로 준비해야 할 것
‘AI를 기획한다’고 하면 거창하게 들릴 수 있지만, 진입 문턱 자체는 생각보다 낮다. 중요한 것은 ‘AI 리터러시’라고 부를 수 있는 기초 감각이다. 다음 세 가지를 실제로 해보면서 감을 쌓는 것이 출발점이다.
- ChatGPT, Claude 등 생성형 AI 도구를 업무에 직접 써보기: 단순히 써보는 것이 아니라, ‘이 응답은 왜 이렇게 나왔을까’, ‘어떻게 질문을 바꾸면 더 나은 결과가 나올까’를 의식하면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경험이 프롬프트 설계력과 서비스 기획력의 기초가 된다.
- 노코드 AI 도구로 작은 프로토타입 만들어보기: Notion AI, Zapier AI 등을 활용해 실제 업무 자동화를 시도해보면 AI 서비스가 어떤 구조로 작동하는지 몸으로 익힐 수 있다. 포트폴리오로도 쓸 수 있다.
- AI 도입 사례 분석하기: 국내외 기업들이 AI를 어떤 문제에 적용했는지, 어떤 결과를 얻었는지 분석하는 습관을 기른다. 기획 면접에서 단골로 나오는 질문이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득력 있게 구체화하는 훈련이 된다.
여기에 더해 자신의 기존 도메인 지식을 AI와 연결하는 시각이 있으면 경쟁력이 한층 높아진다. 마케팅을 잘 아는 사람이 AI 마케팅 자동화를 기획하거나, 교육 분야 경험이 있는 사람이 AI 튜터 서비스를 설계하는 식으로, 도메인 전문성은 단순 AI 지식보다 더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이력서와 포트폴리오에서 무엇을 보여줘야 하는가
AI 기획 직군 채용 담당자가 이력서에서 가장 먼저 보는 것은 ‘AI 관련 자격증 보유 여부’가 아니다. ‘실제로 AI를 활용해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이다. 직무 경험이 전혀 없더라도 다음 요소들로 경쟁력을 드러낼 수 있다.
- AI 도구를 활용한 업무 성과 수치화: 예를 들어 “ChatGPT를 활용해 주간 보고서 작성 시간을 40% 줄였다”처럼 도구 활용 경험을 결과 중심으로 서술한다. 직책·규모와 상관없이 실체 있는 경험이면 충분히 인정받는다.
- 서비스 기획서 또는 프로세스 설계 문서: 실제로 만들지 않더라도 ‘AI를 이용해 특정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 기획안’을 작성해 포트폴리오로 제출할 수 있다. 문제 정의 → 타깃 사용자 설정 → 솔루션 설계 → 기대 효과 측정 방식 순으로 구성하면 기획력이 명확하게 전달된다.
- 사이드 프로젝트 또는 해커톤 참가 기록: 코딩 없이도 아이디어 제안, 기획 발표, 팀 조율 역할로 참여한 기록을 포트폴리오에 담을 수 있다.
이력서 한 줄을 쓸 때도 ‘무엇을 했다’보다 ‘어떤 문제를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방식으로 해결했는가’를 중심에 두는 것이 AI 기획 직군에서는 특히 중요하다. 기획자를 뽑는다는 것은 결국 ‘이 사람이 문제를 잘 정의하고 해결책을 현실화할 수 있는가’를 보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직이나 전환을 고민 중이라면 확인해야 할 것들
AI 관련 기획·설계 직군으로 이직을 고민할 때 흔히 하는 실수가 있다. 자신의 현재 직군과 목표 직군 사이의 거리를 너무 크게 느껴 시작조차 못 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생각보다 가까운 경우가 많다.
콘텐츠 기획 경험이 있다면 AI 콘텐츠 설계로, 교육 설계 경험이 있다면 AI 튜터링 서비스 기획으로, 운영·총무 경험이 있다면 사내 AI 업무 자동화 프로젝트 기획으로 연결할 수 있다. 핵심은 기존 경험에서 ‘문제 정의’, ‘프로세스 설계’, ‘이해관계자 조율’ 경험을 찾아내 AI 맥락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다.
전환 전에 스스로에게 해봐야 할 질문은 이렇다.
- 나는 현재 어떤 도메인에서 어떤 문제들을 다뤄왔는가?
- 그 문제들 중 AI가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은 어디인가?
- 내가 그 개입 지점을 설계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이 있다면, 이미 이직을 시작할 준비가 된 것이다. 자격증이나 학위보다 이 ‘연결 서사’가 면접에서 훨씬 강력하게 작동한다.
AI 기획자로 성장하는 데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가
이 질문에 단정적으로 답하기는 어렵다. 개인의 출발점, 목표 직군의 요구 수준, 투자하는 시간의 밀도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다만 현장에서 만나는 전환 성공 사례들을 보면 몇 가지 공통된 패턴이 있다.
빠른 전환 사례의 경우 이미 기획·설계 경험이 있는 사람이 AI 리터러시를 3~6개월 집중적으로 쌓으면서 실제 사이드 프로젝트나 사내 AI 도입 기여 경험을 만들어낸 경우다. 학습 기간보다 ‘직접 해본 경험’을 만드는 데 에너지를 집중한 것이 공통점이다.
반면 개발 지식을 완전히 새로 쌓으려는 방향으로 접근하면 오히려 시간이 더 걸리고, 차별화가 어렵다. 비개발 직군이 경쟁력을 갖추는 경로는 ‘나도 코딩할 수 있다’가 아니라 ‘나는 개발자가 하기 어려운 이 부분을 잘한다’를 증명하는 것이다.
지금 누스쿨 커뮤니티에서는 AI 기획 직군으로의 전환을 고민하거나 이미 준비 중인 사람들이 실제 경험을 나누고 있다. 방향이 잘 안 잡히거나, 내 경험이 이쪽 직군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점검해보고 싶다면 멘토링을 통해 구체적인 로드맵을 잡아보는 것도 좋은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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