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공고에 ‘AI 툴 활용 능력 우대’라는 문구가 등장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 자리에 ‘AI 툴 활용 능력 필수’라는 표현이 늘고 있다. 생성형 AI가 글쓰기, 데이터 정리, 코드 초안 작성, 발표 자료 구성까지 빠르게 흡수하면서, 한때 경쟁력이었던 기술들이 기본 소양으로 내려앉고 있다. 그렇다면 AI가 대부분의 ‘산출물’을 처리할 수 있는 시대에 사람이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글은 그 질문에 실용적으로 답하기 위해 썼다.
AI가 실제로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을 구분하라
먼저 냉정하게 확인할 것이 있다. 현재의 AI는 정해진 형식에 맞게 대량의 텍스트를 빠르게 생성하고, 반복적인 데이터 변환 작업을 처리하며, 이미 알려진 지식을 요약·정리하는 데 탁월하다. 이 영역에서 사람이 AI보다 ‘더 빠르게’ 경쟁하는 전략은 장기적으로 유효하지 않다.
반면 AI가 여전히 취약한 영역이 있다. 새로운 문제의 구조 자체를 정의하는 일, 복잡한 이해관계자를 실시간으로 조율하는 일, 모호한 상황에서 책임 있는 판단을 내리는 일, 그리고 조직 안에서 신뢰를 쌓아가는 인간적 관계의 영역이다. AI는 지시를 받아 실행하지만, 무엇을 지시할지 결정하는 사람이 아직 필요하다.
자신의 커리어를 설계할 때 이 구분을 먼저 해야 한다. 현재 내 업무에서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부분은 어디이고, AI가 아직 대신할 수 없는 부분은 어디인지를 솔직하게 목록으로 만들어 보는 것이 출발점이다.
문제 정의 능력: 질문을 설계하는 사람
AI에게 좋은 답을 얻으려면 좋은 질문이 필요하다. 이 단순한 사실이 커리어 관점에서는 큰 함의를 갖는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답을 빠르게 찾는 능력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설계하는 능력이다.
실무에서 이것은 ‘문제 정의 능력’으로 나타난다. 팀 내에서 막연하게 논의되는 과제를 구체적인 작업 단위로 쪼개고, 무엇이 핵심 가정이고 무엇이 부차적 변수인지 가려내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매출이 줄었다’는 현상이 주어졌을 때, “어느 채널에서, 어떤 고객군이, 언제부터, 어떤 행동 변화를 보이는가”로 질문을 쪼개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AI 도구를 쓰든 안 쓰든 결과에서 드러난다.
이 능력을 키우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의도적으로 ‘왜’를 반복하는 습관이다. 어떤 요청이 들어오든 그 요청의 배경, 즉 요청자가 진짜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무엇인지를 먼저 파악하는 루틴을 만들어 두면,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를 구조화하는 근육이 쌓인다.
도메인 지식: AI 출력물의 품질을 검수하는 눈
AI가 생성한 내용이 맞는지 틀린지를 판단하려면 해당 분야의 실질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이것은 역설적으로 AI 시대에 도메인 전문성의 가치가 더 높아졌음을 뜻한다. AI 출력물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하는 사람과, 그것을 검토하고 수정하고 책임질 수 있는 사람 사이의 간극은 갈수록 벌어진다.
특히 법률, 의료, 재무, 교육처럼 판단의 오류가 실질적 피해로 이어지는 분야에서는 도메인 전문가의 역할이 줄어들기는커녕 더 중요해지고 있다. AI가 초안을 만들더라도 최종 판단과 책임은 사람이 진다. 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커리어 관점에서 전략은 명확하다. 특정 산업이나 직무 영역에서 ‘이 정도면 AI 출력물이 수준에 맞는지 아닌지를 바로 알아볼 수 있다’는 수준의 전문성을 쌓는 것이다. 넓게 조금씩 아는 것보다, 한 영역에서 깊이 있는 판단력을 갖춘 사람이 AI 시대에 더 안정적인 위치를 유지한다.
커뮤니케이션과 조율 능력: AI가 진입하지 못하는 영역
조직 내에서 실제로 일이 진행되는 방식을 보면, 기술적 능력 못지않게 사람 사이의 조율이 결과를 좌우하는 경우가 많다. 이해관계가 다른 팀 사이에서 합의점을 찾거나, 클라이언트의 막연한 요구를 구체적인 방향으로 정리하거나, 갈등이 생겼을 때 감정적 맥락을 읽으면서 해결책을 제안하는 일은 현재의 AI가 대신할 수 없다.
특히 실시간 대면·비대면 소통에서 상대방의 맥락을 읽고 적절하게 반응하는 능력은 경험을 통해서만 쌓인다. 회의에서 어떤 타이밍에 어떤 말을 꺼내야 분위기가 풀리는지, 메일 한 통의 어조가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텍스트로만 배울 수 없다.
이 능력은 의식적으로 노출을 늘려야 개발된다. 발표 기회, 회의 진행 역할, 이해관계자와의 직접 소통 기회를 피하지 않고 쌓는 것이 전략이다. 처음에는 불편하고 실수도 있지만, 그 경험이 장기적으로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역량으로 쌓인다.
신뢰와 평판: 시간이 만드는 경쟁력
어떤 능력이 있느냐와 함께, 그 능력이 주변에 알려져 있는지가 실질적인 기회를 결정한다. 커리어에서 ‘신뢰’는 단기간에 형성되지 않는다. 한 분야에서 꾸준히 일하면서 약속을 지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책임감 있게 행동하고,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과정이 쌓여야 한다.
AI가 빠르게 보급될수록, 역설적으로 ‘이 사람의 판단은 믿을 수 있다’는 평판을 가진 사람의 희소성은 높아진다. 알고리즘이 추천하는 결과물과, 특정인이 직접 검토하고 보증하는 결과물이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상황이 이미 일부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신뢰와 평판은 조직 내부와 외부 모두에서 쌓을 수 있다. 사내에서는 맡은 일을 완결성 있게 처리하고, 동료와 협업할 때 신뢰를 주는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기본이다. 외부적으로는 자신이 잘 아는 주제에 대해 글을 쓰거나, 커뮤니티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하거나, 멘토링 활동을 통해 전문성을 알려가는 방법이 있다.
AI를 도구로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한 구체적 행동
AI 시대에 뒤처지지 않으려면 AI를 무조건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아래는 지금 바로 시작할 수 있는 구체적인 행동 목록이다.
- 현재 업무를 AI 대체 가능성 기준으로 분류하기: 반복성·규칙성·정보 처리 중심 업무는 AI가 빠르게 침투한다. 이 영역에서 비율을 낮추고, 판단·설계·관계 중심 업무의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역할을 재설계한다.
- AI 출력물을 검수할 수 있는 도메인 지식 쌓기: AI가 생성한 내용에서 오류나 편향을 잡아낼 수 있는 수준까지 특정 분야를 깊이 있게 공부한다. 이 능력은 AI 사용 능력과 함께 강력한 조합이 된다.
- 문제 정의 연습 루틴 만들기: 매일 또는 매주 하나의 과제에 대해 ‘이 문제의 진짜 질문은 무엇인가’를 기록하는 습관을 만든다. 일기나 메모 형식이어도 충분하다.
- 커뮤니케이션 기회에 의도적으로 노출되기: 발표, 회의 퍼실리테이션, 외부 강연, 1:1 멘토링 등 사람과 직접 소통하는 기회를 피하지 않고 축적한다.
- 공개적으로 전문성 드러내기: 자신이 아는 것을 글, 발표, 온라인 커뮤니티 기여 등으로 외부에 공유한다. 평판은 쌓이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일찍 시작할수록 유리하다.
AI 역량이 기본기가 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기본기 위에 무엇을 쌓느냐는 여전히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문제를 정의하고, 깊이 있게 알며, 신뢰를 쌓고, 사람과 조율하는 능력은 AI가 기본기가 될수록 더 귀해진다. 누스쿨 커뮤니티와 멘토링 세션에서는 이런 고민을 함께 나누고, 각자의 커리어 방향을 구체화하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 AI 시대의 차별화 전략을 혼자 고민하는 대신, 같은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보기를 권한다.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