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수생이었던 나는, 결국 타의로 수능을 포기하게 됐다. 더는 미룰 수 없다는 통지서 한 장에 반은 좌절했고, 반은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군대에 입대했다. 지금 돌아보면 우습게도, 그 군대 생활이 내 인생의 방향을 통째로 바꿔 놓았다. 대학이 전부인 줄 알았던 내가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를 처음으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곳이 하필이면 부대 안이었으니까.
![[자서전] 군대에서 만난 인생의 전환점 인생의 전환점](https://nuschool.cc/wp-content/uploads/2025/10/ja-jaep02.jpg)
스물둘, 핼러윈 데이에 입대하다
입대 날은 스물두 살 10월 31일, 핼러윈 데이였고 동시에 내 생일이었다. 사실 별생각 없었다. 원래 생일을 잘 챙기는 편도 아니다. 겨울같이 추웠던 10월 말, 나는 모든 걸 내려놓고 논산 훈련소로 들어갔다. 다들 하나같이 머리를 밀고 열을 맞춰 서 있었다.
교관은 집에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지금 즉시 돌아가도 좋다고 했다.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는 사람이 있겠어?’ 싶었는데, 생각보다 그날 자진해서 퇴소하는 사람이 꽤 많았다. 갑자기 궁금증이 생겨서 조교에게 슬쩍 물어봤다. 만약 오늘 불참하거나 지각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조교는 무덤덤한 말투로 자동으로 연기된다고 했다. 솔직히 이때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런 기분도 금방 잊었다. 잊을 수밖에 없었다.
밖에서 친구들이나 형들에게 들은 것보다 훈련은 훨씬 더 혹독했다. 그래서 딴생각이 들 틈이 없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몸을 혹사시킨 만큼 왠지 모를 스트레스가 풀렸다. 온몸이 근육통에 시달리고 목이 다 쉬고 발뒤꿈치가 까져도, 속은 이상하게 시원했다. 전우들과 부대끼며 트러블도 있었고 그만큼 끈끈함과 즐거움도 있었다.
군대 체질인가 싶었던, 자대에서의 시간
‘나는 군대 체질인가 보다’ 싶을 때쯤 경찰학교에 입소해 편하게 2주를 보냈고, 운 좋게도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자대 배치를 받았다. 훈련보다는 정해진 구역을 교대로 순찰하고 경비하는 근무가 주였다. 밤에 제대로 잠을 못 자는 것만 빼면 그렇게 힘든 곳은 아니었다.
다만 고참들이 후임들에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곳이긴 했다. 그래도 그럭저럭 잘 버텨냈다. 1년쯤 지나니 내 위의 고참들은 거의 다 전역했고, 나는 남은 1년 정도를 이른바 ‘왕고’ 생활로 보냈다. 그러는 사이 후임들이 들어왔고, 군 생활이 반쯤 지나갈 무렵 한 가지를 느꼈다. 후임들은 대체로 좋은 대학에, 좋은 집안 출신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중 유독 책을 좋아하는 한 녀석과 함께 근무를 나가는 일이 잦아졌다. 그리고 나는 서서히 그 친구에게 물들기 시작했다.
책을 좋아하던, 세 살 어린 후임
어느 날부터 나는 내 처지에 대한 고민을 그 녀석에게 털어놓고 있었다. 바로 그 책 좋아하는 후임 말이다. 심지어 나보다 나이가 세 살이나 어렸다. 그런 어린 친구에게 뭘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저 군 생활이 끝난 뒤가 너무 걱정돼서, 어디라도 속을 풀어놓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뭔가 커다란 깨달음을 얻게 해줬다. 고참이라고 형식적으로 위로해 주는 느낌이 전혀 아니었다. 정말 나를 위해 진심으로 함께 걱정해 줬다. 관계가 거꾸로 된 것 같은, 좀 묘한 멘토링이었다.
“열심히 하는 고졸을 쓰고 싶다” — 어느 사장의 철학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조선소를 운영하는 회사 사장의 아들이었다. 그 녀석의 아버지는 늘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한다.
“대충 일하는 대졸보다, 열심히 일하는 고졸을 우리 회사에서는 훨씬 더 쓰고 싶다.”
고졸이라도 열정만 있으면 취업은 충분히 된다는 말이었다. 직접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의 입에서, 그것도 아들을 통해 건너 들은 말이라 그런지 묘하게 힘이 됐다. 솔직히 말하면, 그 한마디 덕분에 나는 지금까지도 먹고사는 걱정만큼은 크게 하지 않게 된 것 같다. 학력이 아니라 태도가 사람을 먹여 살린다는 걸, 나는 부대 안에서 처음 배웠다.
첫 독서, 그리고 ‘국비지원’이라는 단어
그 후임은 슬그머니 책을 한 권, 두 권 권하기 시작했다. 내 고민에 딱 맞는 자기계발서부터 소설까지, 장르도 다양했다. 권해준 책은 하나도 빠짐없이 다 읽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스스로 한 첫 독서였다.
그뿐이 아니었다. 밖에 나가면 컴퓨터 관련 학원이 많고, 국가에서 비용을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다는 정보까지 알려줬다. 그때까지 나에게는 완전히 처음 듣는 세계였다.
- 스스로 골라 읽은 첫 책 — 독서가 습관이 되는 출발점
- 고졸도 열정이 있으면 취업이 된다는, 현업 경영자의 시선
- 국비지원 컴퓨터 학원이라는, 전혀 몰랐던 진로의 통로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어린 친구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어쨌든 그 대화들 덕분에 나는 군대 안에서 “나의 20대를 어떻게 보내고 살아갈 것인가”를 처음으로 계획하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나는 인복이 참 좋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인복이 정말 좋은 편이었다. 대학에 떨어지고, 갈 곳이 없어서 떠밀리듯 들어간 군대가 오히려 나에게는 쉼터이자 학교였다. 책 한 권을 건네준 어린 후임, 그 후임의 아버지가 남긴 한마디, 그리고 처음 알게 된 국비지원이라는 단어. 그 작은 조각들이 모여 내 20대의 방향을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군대에서 참 많은 걸 배우고 느끼며 전역을 하게 됐다. 입대할 땐 아무것도 없는 사수생이었지만, 나올 땐 적어도 ‘무엇을 해볼지’에 대한 작은 지도 한 장은 손에 쥐고 있었다. 인생의 전환점은 거창한 곳에 있지 않았다. 내가 가장 막막했던 그 시간, 바로 그 한가운데에 있었다.
📖 자서전 시리즈 더 보기
← 이전 글: [자서전] 꼴찌 4수생, 대학이 전부인 줄 알았다
다음 글: [자서전] 디자인과 프로그래밍도 구분 못하던 청년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