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이 자서전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다. 재수·삼수·사수를 거듭하던 꼴찌 시절부터, 고졸이라는 낙인, 학점은행제와 고용계약형 석사, 회사 안에서 부대끼던 날들, 그리고 프리랜서로 자리를 잡기까지 — 그 긴 이야기를 여기까지 풀어왔다. 마지막 편에서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일도, 돈도 아닌 “취미” 이야기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에게는 이 취미가 결국 창업으로, 그리고 지금 이렇게 멘토링을 하고 있는 자리로까지 이어졌다.
![[자서전] 취미가 길이 되다 — 다이빙, 그리고 멘토링의 시작 취미가 된 스쿠버다이빙](https://nuschool.cc/wp-content/uploads/2025/11/ja-226441-js30_05.jpg)
그러니 이건 단순한 취미 자랑이 아니다. 한 사람이 좋아하는 일에 미쳐보니 그게 어떻게 삶의 활기가 되고, 일이 되고, 결국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일까지 닿게 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이다. 자서전의 끝을 여기에 두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자서전] 취미가 길이 되다 — 다이빙, 그리고 멘토링의 시작 강의·멘토링 현장](https://nuschool.cc/wp-content/uploads/2025/11/ja-226441-js28_02.jpg)
취미에 차 한 대 값을 쏟아붓다
내 인생을 통째로 흔들어 놓은 취미가 있다. 바로 스쿠버다이빙과 프리다이빙이다.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다. 세부 어학연수 시절,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함께 처음 물속에 들어가 본 게 전부였다. 그때만 해도 그냥 해외여행 다니다가 한두 번 즐기고 말 경험쯤으로 여겼다. 솔직히 내 수준에 비하면 너무 비싼 취미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몇 년 뒤, 세부에서 인연을 맺은 형과 이집트 다합에서 프리다이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마음 하나로 한국에서 자격증을 땄다. 그러다 동호회에 들어가게 됐고, 거기서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스쿠버다이빙도 다시 시작하게 됐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그 형들과 친한 사람들이 죄다 고수입의 능력자들이었다. 함께 다이빙을 하고 인생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그들의 마인드를 배웠다. 그러면서 내 눈도 같이 높아졌다. 돈만 잘 버는 사람들이 아니라,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일과 휴식의 밸런스를 스스로 조절하고, 자기 인생을 계획할 줄 아는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그게 부러웠다.
그 무렵, 세부에서 같이 다이빙을 시작했던 그 형이 다합에서 프리다이빙 강사를 한 지 2년쯤 됐다는 소식을, 그리고 우리가 함께 배웠던 세부의 다이빙샵에서 스쿠버 마스터로 일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형을 만나러 휴가를 냈다. 정작 프리다이빙은 못 하고 스쿠버다이빙만 하고 와서 아쉬웠는데, 묘하게도 이 아쉬움이 하나의 계기가 됐다.
한국에 돌아와 나름 유명한 동호회에서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다 국내 동해에서 스쿠버다이빙을 처음 해봤는데, 세부와는 또 다른 색다른 느낌이 있었다. 그 잊을 수 없는 동해를 계기로 국내에서 다이빙을 이어가며 장비를 하나둘 사기 시작했다. 스페셜티(자격증과는 별개로 스쿠버 내 지식과 기술을 배우는 과정)도 따기 시작했고, 국내외 투어를 대규모 인원과 다니는 재미에 빠졌다. 동호회 사람들과는 평일 주말 가리지 않고 벙개를 쳐서 밤새 술 마시며 다이빙 얘기를 했다.
그러다 보니 비용이 만만치 않게 들어갔다. 매년 장비 구매와 투어 비용으로 많게는 1,000만 원을 쉽게 썼다. 이 글을 쓰는 시점이 5년 차인데, 그동안 다이빙에 쏟아부은 돈이 어림잡아 3,000만 원 정도 된다. 말 그대로 취미에 차 한 대 값을 퍼부은 셈이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그 돈으로 산 경험과 사람, 그리고 마인드가 결코 아깝지 않기 때문이다.
![[자서전] 취미가 길이 되다 — 다이빙, 그리고 멘토링의 시작 멘토링하는 모습](https://nuschool.cc/wp-content/uploads/2025/11/ja-226441-js28_03.jpg)
미친 듯이 빠지니, 길이 보였다
한 가지에 이렇게까지 미쳐보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스쿠버 업계의 문제점과 불편한 점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걸 해결하면 그대로 수익이 되겠는데?” 하는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다.
그 생각을 처음 노트에 적은 게 벌써 3년 전이다. 그동안 기획과 설계를 마치고 지금은 구현 단계에 들어가 있다. 첫 직장의 사수와 함께 만들고 있고, 속도를 내기 위해 팀원도 찾는 중이다. 다이버들을 위한 앱인데, 2024년 상반기 안에 친한 다이버들에게 먼저 베타 서비스를 선보이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좋아서 시작한 취미가, 좋아서 만드는 사업으로 이어진 셈이다.
재미있는 건, 이게 내가 줄곧 해온 방식과 똑같다는 점이다. 나는 큰 결심을 하고 도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좋아하는 것에 빠져들었고, 그 안에서 불편함을 발견했고, 그걸 해결하려다 보니 어느새 길이 나 있었다. 거창한 계획보다 그날그날의 몰입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자서전] 취미가 길이 되다 — 다이빙, 그리고 멘토링의 시작 멘티들과 함께한 자리](https://nuschool.cc/wp-content/uploads/2025/11/ja-226441-js30_03.jpg)
여유, 그리고 활기를 만드는 건 결국 돈
솔직하게 말하면, 지금 나는 현재 생활에 적당히 만족하고 있다. 먹고 싶은 음식을 언제든 먹을 수 있고, 사고 싶은 옷도 별 거리낌 없이 산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오히려 옷이나 음식에 집착하지 않게 됐다.
돈이 좀 있어야 즐길 수 있는 스쿠버다이빙이라는 취미도 가졌고, 다이빙을 함께 즐기던 친구의 소개로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도 했다. 마음에 여유가 생기니 소비에 부족함이 없다. 불과 몇 년 전, 대기업에 다니면서도 늘 쪼들리던 생활을 떠올리면 격세지감이다. 여유가 생기니까 하고 싶은 게 많아지고, 그러면서 삶에 활력이 더 생긴다. 여유와 활기를 만드는 게 결국 돈이라는 말을, 나는 좀 씁쓸하지만 인정한다.
프리랜서는 연봉이 아니라 실수령액이 얼마인지가 중요하다. 내 실수령액은 흔히 말하는 고액 연봉자로 분류된다. 그런데 이제는 남의 일을 대신 해주고 봉급을 받는 일을 더는 하고 싶지 않아졌다. 지금 일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고 싶은 일로 돈을 벌어보려고 무자본 창업을 시작한 거다.
그뿐만이 아니다. 몇 해 전부터 주식도 시작했고, 블로그도 유튜브도 하고 있다. 그리고 고졸 취준생이 IT 분야에 취업할 수 있도록 성장 멘토링도 진행하고 있다. 당장 돈이 벌리지 않더라도,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냥 해버린다. 단순히 재미를 위해서냐고? 아니, 이쯤 되면 그냥 또 다른 취미라고 부르는 게 맞는 것 같다.
![[자서전] 취미가 길이 되다 — 다이빙, 그리고 멘토링의 시작 멘토링 워크숍 단체 사진](https://nuschool.cc/wp-content/uploads/2025/11/ja-226441-js29_03.jpg)
돌고 돌아, 결국 멘토링
인생만사 새옹지마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처음부터 도전적인 사람이 전혀 아니었다. 모든 움직임의 출발점은 거창한 꿈이 아니라 “고용 불안정”이라는 두려움이었다. 일이 끊길까 봐, 생활비가 막힐까 봐 움직였고, 그러다 결국 깨달았다. 나에게 가장 중요한 건 생활비의 안정이라는 것을.
그래서 고용 안정과 생활비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고 달려왔다. 그 과정에서 내가 진짜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됐고, 비로소 내 길을 찾았다. 지금은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중이다. 그동안 시련과 고난도 많았지만 나름대로 잘 헤쳐왔고, 앞으로도 그런 어려움이 또 오리란 걸 안다. 그래도 잘 풀어나갈 거라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있다.
그렇게 돌고 돌아 지금 나는, 나와 비슷한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내 경험을 나누는 일을 하고 있다. 돈이 되어서가 아니다. 고졸이라는 낙인 앞에서 망설이던 그때의 나에게,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 때문이다. 내가 했던 수많은 실패는 전부 내 성장의 발판이 됐다. 그 발판을 혼자만 밟고 지나가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이라는 꽃이 피는 시간
요즘은 SNS만 봐도 영리치가 넘쳐난다. 회사 생활 한 번 안 해보고 창업해서 성공했다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수는 없다. 꽃의 종류가 저마다 다르듯, 살아가는 시기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시기도 모두 다르다. 그러니 평범한 당신은 부디 “평균 올려치기”에 속지 않았으면 좋겠다. 남들의 화려한 단면을 평균이라 착각하는 순간, 내 속도가 초라하게 느껴질 뿐이다.
지금 당장 초라해 보이더라도 상심하지 마라. 당신이라는 꽃이 피는 시간은 분명히 돌아온다. 그때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된다. 나도 재수생, 백수, 폐업, 숱한 실패를 거치고 나서야 지금 이 자리에 왔다. 빠른 사람이 이기는 게 아니라, 끝까지 남는 사람이 이긴다고 믿는다.
긴 자서전을 여기까지 읽어준 당신에게 고맙다. 거창한 성공담을 들려주려고 쓴 글이 아니다. 나처럼 평균쯤 되는 사람도,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고 그날그날 최선을 다하다 보면 결국 자기 길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길을 혼자 걷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같은 길을 먼저 걸어본 사람으로서, 나는 언제든 당신 곁에서 그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되어 있다. 열심히 하려는 젊은 친구들을, 나는 늘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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