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넷. 남들은 자리를 잡았다는 나이에, 나는 1년을 통째로 비워 두고 다시 출발선에 서 있었다. 해외취업을 해보겠다고 영어를 붙잡았다가, 먹고살려고 프로젝트에 들어갔다가, 또 영어로 돌아왔다가. 돌이켜보면 참 정신없이 왔다 갔다 했는데, 그 1년이 결국 나를 지금 자리로 데려다 놨다. 이번 편은 그 공백과 재취업, 그리고 끝내 접었던 해외취업 도전기에 대한 이야기다.
![[자서전] 34살, 공백 후 재취업과 해외취업 도전 재취업과 해외취업 도전](https://nuschool.cc/wp-content/uploads/2025/11/ja-jaep13.jpg)
해외취업을 꿈꾸며 다시 영어를 붙잡다
그즈음 나는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쪽으로 해외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IT 직종에 대한 우대가 있다는 곳이었고, 급여가 많다더라는 막연한 소문 하나만 믿고 시작했다. 솔직히 그게 전부였다.
해외취업을 하려면 영어 시험이 필요했다. 그래서 2개월간 IELTS 시험을 준비했다. 학원에서는 2달 과정으로 가능하다고 했지만, 회화에 능통한 사람이 아니면 정말 어렵고 범위도 넓었다. 2달이 지나면 곧장 생활고로 넘어가는 상황이라, 나는 플랜 B를 가지고 있어야만 했다. 그래서 이력서 업데이트를 병행했다. 시험에만 모든 걸 걸기엔 내 통장이 받쳐주질 못했다.
시험 직전에 들어온 프로젝트 제의
시험을 보기 바로 직전에, 한 회사에서 프로젝트 투입 제의가 왔다. 시험을 보고 들어가려고 했는데 긴급 구인이었다. 결국 시험을 포기했다. 사실 시험에 자신이 없기도 했다. 핑계 같지만, 당장의 생활비가 더 급한 현실이었다.
그렇게 생활비를 벌기 위해 6개월간 프리랜서로 일했다. 그 와중에도 틈날 때마다 다시 영어 공부를 했다. 프로젝트가 끝나면 2개월짜리 학원을 다시 다닐 생각이었다. 그런데 프로젝트 종료 시점에 맞춰 즉시 다른 프로젝트 투입 요청이 들어왔다. 또 6개월이다.
여기서 고민이 시작됐다. 프리랜서는 일이 없을 때도 많다. 그 불안감 때문에 평생 이 일만 하기는 싫었다. 한 번 더 재투입되면 영영 프리랜서로 굳어질 것 같았다. 그래도 당장 통장에 꽂히는 수입이 나쁘지 않아서, 결국 진행하기로 해버렸다. 머리로는 아니라고 하면서 몸은 또 현실을 택한 셈이다.
1년이 지나고, 다시 영어 시험 앞에서
그렇게 1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학원비와 몇 달 동안 생활할 수 있는 자금은 모았다. 대신 바쁜 일정 때문에 영어 공부는 거의 손을 놨다. 사실상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판이었다.
IELTS를 다시 붙잡기는 버거울 것 같았다. 그래도 영어 시험 경험 하나쯤은 필요하겠다 싶어서, OPIC을 1달간 준비했다. 그러면서 다시 해외취업할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지금 내 프리랜서 급여보다 높은 해외 직장이 없더라. 급여 많다는 그 막연한 소문은 적어도 내 경우엔 맞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해외취업은 자연스럽게 포기하게 됐다. 거창하게 접은 것도 아니고, 그냥 계산기를 두드려 보니 답이 안 나와서 조용히 내려놓은 거다.
같은 경력, 정반대의 평가
국내 취업을 준비하며 이력서를 계속 업데이트하던 중에 느낀 점이 있다. 내 스펙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늘 걸리는 건 하나였다. IT 안에서 한 직무에 머물지 못했다는 점.
이건 면접관의 눈에 거슬렸다. 해당 기업의 면접관들은 앞으로 내가 맡을 직무의 전문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기업 입장에서는 애매한 포지션으로 인식됐다는 뜻이다. 솔직히 나도 그 점은 인정했다. 인사 담당자 입장에서 보면, 정체가 애매한 사람에게 중요한 직책을 맡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똑같은 이력서를 두고 정반대의 평가가 나왔다. 프리랜서 전문 헤드헌터의 눈에는, 여러 기술과 경험을 두루 보유한 내 이력서가 오히려 매력적이라고 했다. 보안을 할 줄 아는 시스템 엔지니어, 디자인을 할 줄 아는 개발자, 인프라 구성을 할 줄 아는 솔루션 엔지니어. 그런 식으로 평가받았다. 여러 프로젝트를 경험했고, 그 안에서 터지는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많았다. 그렇게 고난과 역경을 헤쳐 나가다 보니, 어느새 나는 아무나 쉽게 가질 수 없는 지혜를 가진 IT 전문가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같은 경력인데 기업은 약점으로 보고, 헤드헌터는 강점으로 봤다. 결국 경력은 그 자체가 아니라, 누가 어떤 잣대로 보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는 걸 그때 몸으로 배웠다. 덕분에 프리랜서 프로젝트 투입 요청이 정말 많이 들어왔고, 나중에는 내가 골라서 할 수 있게 됐다. 지금도 러브콜은 계속 받고 있다.
잦은 이직이 남긴 것
이런 식으로 옮겨 다니다 보니, 나는 취업 면접 경험이 유난히 많은 사람이 됐다. 이력서를 쓰는 법, 면접을 잘 보는 노하우가 차곡차곡 쌓였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연봉 협상도 능숙해졌다. 여러 기업에서 일하며 다양한 회사 문화도 겪어봤다. 3년간 5번의 이직이 있었는데, 프리랜서가 4번, 정직원으로 간 게 1번이었다.
한 번 정직원으로 돌아갔던 이유는, 앞에서 말한 프리랜서의 불안한 입지 때문이었다. 꾸준한 수요가 없으면 곧 강제 백수 생활이다. 그게 늘 심리적 불안감으로 작용했다. 그런데 막상 정직원으로 가보니 보수가 적어서, 결국 다시 프리랜서로 돌아왔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불안한 입지만 해결되면 굳이 프리랜서를 그만둘 이유가 없었다.
그 답을 찾은 게 지금 일이다. 한 프로젝트에서 1년마다 재계약하는 방식으로, 현재는 누구나 알 만한 대기업에서 5년째 안정적으로 IT 인프라 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고용 불안이라는 프리랜서의 약점은 사라지고, 높은 급여라는 장점만 남은 셈이다. 연봉은 아마 직장 근로자 중 상위 10% 안에는 들지 않을까 싶다.
돌아보니, 공백이 길이 됐다
해외취업은 결국 못 했다. IELTS도 중간에 접었고, OPIC도 시험 경험 한 줄로 남았을 뿐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이건 다 실패라고 부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어수선했던 1년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답에 영영 도달하지 못했을 것 같다.
영어를 붙잡았다 놨다 한 덕에 내가 뭘 진짜 원하는지 알게 됐고, 이력서를 수없이 고쳐 쓴 덕에 내 경력이 어떤 눈에는 약점이고 어떤 눈에는 강점인지를 배웠다. 정직원과 프리랜서를 오간 덕에 내게 맞는 일하는 방식도 찾았다. 그러니 지금 공백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조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비어 있는 것처럼 보이는 그 시간이, 사실은 길을 내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 자서전 시리즈 더 보기
← 이전 글: [자서전] 떠나라 — 세부 어학연수와 다이빙과의 만남
다음 글: [자서전] 결국 프리랜서로 — 불안 대신 안정 →



💬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