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문득, 고2 겨울방학에 헬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체대 입시를 준비하고 있었고 운동할 공간이 필요했다. 같이 입시 체육을 하기로 한 친구가 소개해 준 자리였다. 업무는 정말 단순했다. 아침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헬스장 청소를 하고 월 10만 원을 받는 일. 당시 최저 시급이 2,000원이던 시절이었으니,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일을 정리하자면 이랬다.
- 청소기로 바닥을 청소하고, 흩어진 원판을 제자리에 놓는다.
- 샤워실에 샴푸를 채우고, 사용된 타올을 세탁기 앞에 모아 둔다. (빨래는 다른 업체가 처리)
이렇게 간단한 일을 하고 10만 원을 받으면 됐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헬스장 기구를 공짜로 쓰며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나를 소개해 준 친구는 그 헬스장에서 약 2년을 일했고, 열여덟에 이미 헬스 트레이너 명함을 가지고 있을 정도였다. ‘나도 저 친구처럼 트레이너 경력까지 챙겨야지’ 하고 의지를 불태우며 청소 일을 시작했다.
한 달도 못 채우고 잘렸다
첫 일주일은 무리 없이 잘 해냈던 것 같다. 틈틈이 기구로 운동도 했다. 문제는 2주 차부터였다. 친구들이 좋았던 나는 즉흥적으로 놀자는 제안을 뿌리치지 못했다. 아침에 청소하고 운동하는 것까지는 괜찮았는데, 점심·저녁에 친구들이 모여 놀면 그 자리에 나도 꼭 끼어 있었다. 놀다 보면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렀다. 그렇게 저녁 청소 시간에 지각이 잦아졌다.
3주 차에는 매일 늦었고, 4주 차에는 사장님이 아무 말 없이 직접 청소를 하고 계셨다. 그리고 한 달 치 일한 급여를 주시며 다시는 나오지 말라고 했다. 그렇다. 나는 한 달도 못 채우고 잘렸다.
당시엔 자괴감조차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잘됐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맞지 않는 일이라고, 이 운동도 나에게 도움이 안 되는 종목이라고 스스로 합리화했다. 다만 거슬리는 건 사장님의 눈빛이었다. 한심하게 바라보던 그 눈빛은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내 이미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게 된 순간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불성실해서 알바에서 잘린 애’였다. 소개해 준 친구는 오히려 기대도 안 했다는 반응이었다. 그냥 “잘 좀 하지 그랬어~” 하고 말았다. 그 반응을 통해 그동안 내 이미지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게 됐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부끄러울 만큼, 나에겐 책임감도 성실함도 없었다.
그 이후로도 여러 아르바이트를 경험했다. 대학교 학생 식당 설거지, 동네 호프집 서빙, 로드숍 판매직, 편의점 ATM 현금 수송 회사 등등. 중간중간 자기계발을 위해 잠시 쉰 적은 있어도, 생활비를 위해 꾸준히 일했다. 그 경험들은 책임감과 성실함의 중요성을 점진적으로 깨우치게 해 줬다.
책임을 회피하다 보면 결국 나에게 피해가 돌아온다는 게 무서워서 성실해졌다. 무책임과 불성실로 인한 금전적·정신적 피해를 몸소 겪었기 때문이다. 그 경험을 토대로 점점 무엇이든 책임을 지고 성실히 임하게 됐고, 그렇게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그때 그 트레이너 친구는 지금
아참, 열여덟에 헬스 트레이너 명함을 가졌던 그 친구는 지금 뭐 하고 있냐고? 그 친구는 서른이 되기도 전에 고급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성공한 사업가가 되었다. 확실하진 않지만, 어릴 적부터 책임감과 성실함을 몸에 익혀 온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지금도 나는 그 친구 옆에서 배울 점을 슬쩍슬쩍 훔쳐보고 있다.
처음이라 버티기가 힘든가
처음이라 너무 힘들고 버티기가 벅찬가? 그렇다면 온 힘을 다해 버티지는 마라. 그만두어도 좋다. 대신 그만둔 뒤의 후폭풍은 견뎌 내라. 그리고 다시 도전해라. 이 과정을 반복해라.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책임감과 성실함의 ‘체력’이 점진적으로 길러진다.
무리해서 버티는 순간, 다시는 도전하고 싶지 않아질 수도 있다. 그러니 뭐든지 적당히. 적당히 해라. 무책임하고 불성실했던 그 시절의 나도, 결국 수많은 시행착오를 적당히 반복하면서 조금씩 사람이 되어 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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